[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14) 쿠사츠의 봄 기사의 사진

쿠사츠의 봄 (이형기, 두란노)

언젠가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이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는 장면이 보였던 것이다. 하용조 목사와 몇몇분이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거 사건이구나’ 싶었다.

내가 알기로 그간 몇몇 인사들이 기독교를 가지고 그분 앞에 갔다가 차가운 빙벽 앞에 선 듯 돌아서곤 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이어령 선생과의 식사자리에서 “세례를 받으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라고 했더니 “하용조 목사님께서 권하셔서…”라고 했다. 문득 하 목사가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 하용조. 생각해 보면 그이는 기독교에 냉담했던 한 석학을 무릎 꿇게 했던 것처럼, 유난히 선교가 어려워 보이는 땅에 그리스도의 깃발을 꽂곤 했다.

연예인 선교와 일본 선교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요즘도 가끔 재능 있는 연예인들이 스스로 꽃 같은 목숨을 버리고 떠나는 뉴스를 접할 때면 하용조 목사, 그분이 선각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갖곤 한다.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차마 말 못한 아픔과 외로움을 지닌 연예인들을 보듬고 위로하며 그리스도의 군사로 일어서게 하곤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중견 연기자가 기독교계통 잡지를 하나 창간하고 싶다고 자문을 구해온 적이 있었다. 좀 뜨악한 느낌으로 만났더니 하 목사 얘기를 했다. ‘두란노’로 문서선교의 파란을 일으켰던 하 목사의 영향을 단단히 받은 듯싶었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그분의 영향력에 영적인 화상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호기심을 통해 그 설교를 들어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마침 이슬람권을 다녀온 뒤라며 설교 중에 동그란 이슬람 모자를 써 보이면서, 어떠냐고, 멋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모습이 좀 코믹하기도 하고 엉뚱해서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완전히 내 예상을 빗나가는 설교였다. 여기저기에 끼친 그분의 영향력으로 보아 질풍노도 같은 설교, 등짝에 죽비를 치는 것 같은 카리스마 있는 설교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날 교회를 나오면서 저처럼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어떻게 이 거대 교회를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 목사가 거주지를 천국으로 옮긴 지 1년여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그이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교회 교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담을 넘어서까지 그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선한 영향력이 널리 퍼져 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홍정길 목사 같은 이는 “하용조 없는 지구를 생각할 수 없다”고까지 격한 그리움의 감정을 토로할 정도다. 그러나 그이를 그리워하는 목소리 중에는 누가 뭐래도 평생의 반려였던 사모의 그것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쿠사츠의 봄’은 먼저 떠난 지아비에 대해 아내가 쓴 절절한 그리움의 연서다. 거기에는 무슨 신학적 거대담론 같은 것은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다. 현란한 수사나 미문(美文)의 꾸밈새 같은 것도 없다. 오히려 읽는 사람이 당혹스러워질 만치 초보 글쓰기다운 소탈함과 솔직함으로 일관되어 있다.

한국 현대 교회사에 일획을 긋고 간 거인 하용조가 아닌, 내 남편 하용조의 아프고 약하고 자잘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마치 연애하는 청춘남녀들처럼 두 사람만의 사랑 이야기가 화사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한 목회자에게 어머니와 아내와 누이,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신앙 동지였던 사모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드러나 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대목도 많지만 영어로 말하다가 막히면 1000원씩 내기하는 대목 같은 데서는 소리 내어 웃게 될 정도다.

소꿉장난하듯 예쁘고 아름답게 산 한 부부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하다. 두 사람은 생전 먼저 떠난 사람이 천국의 어떤 문 앞에서 기다리자고 약속을 했다 한다. 마치 둘이서 옛날에 잘 가던 어느 대학 다방 앞에서 만나자는 식으로…. 죽음의 다리를 건너서까지 이어지는 견고한 사랑의 현존을 짚어주는 대목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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