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인성교육 전도사’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의 인생 2막 기사의 사진

“젊은이들 자살·방황 원인 인생 목표 없거나 상실 탓”

이용태(79) 전 삼보컴퓨터 회장을 인터뷰하고 싶었던 건 우리나라의 IT 산업 선구자라는 그의 이력보다 인성교육 전도사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 2막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이 학교에서 날아온 가정통신문에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란 책을 낸 이 전 회장이 학부모들을 상대로 학교에 와서 강의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엄마들의 바람이다. 바쁜 시간을 핑계로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는 워킹맘들에겐 더욱 귀가 쫑긋해지는 주제다. 그런데 그 강의를 엄마가 아닌 여든이 다 된 할아버지가 한단다. 어떤 얘기일까 궁금해 최근 이 전 회장을 만났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2012년 개정판 제목은 ‘한 달에 한 가지 새 습관을 기르자’)란 책을 내고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나는 타고난 선생이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교사도 해봤고, 이화여대 교수도 했다. 학원 강사도 해보고 선생이란 선생은 다 해봤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인성교육에 관심이 있었는데 기업을 운영할 때는 너무 바빠서 시간을 못 내다가 2005년 5월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기업경영에서 손을 떼고 나니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게 됐다. 벌써 7년이 됐다.”

-단도직입적으로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한 가지는 공부 잘 가르쳐서 좋은 학교 보내야 하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인성교육을 시켜서 인품이 좋은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 모든 어머니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하게 하는지는 알고 열심히 한다. 세상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필요하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막연하다. 결국은 ‘자라나면서 배우겠지’ 하다가 그만두게 된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선 세상 사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책에서 인성교육을 위한 방법으로 ‘1-1-6’ 단계와 ‘1-3-10’ 인생헌장을 강조했는데.

“1-1-6은 한 달에 한 시간 6단계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한 달에 한 시간만 인성교육에 투자해라. 가족들이 모여 교훈과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를 읽고, 각자 소감이나 경험을 나누면서 그달에 실천할 일을 정해 습관을 몸에 배게 하자는 것이다. 한 달에 한 가지 습관을 기르면 1년에 12가지 습관이 생긴다. 1-3-10은 한 가지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남과 나, 일 등 3개 분야에서 각각 3가지씩 원칙을 세우고 여기에 효도를 추가해서 10가지 덕목을 실천하라는 의미다. 사춘기 아이들이 방황하고 카이스트 대학생들이 자살하는 게 인생의 큰 목표가 없거나 갑자기 인생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답을 찾게 된다.”

-강연 다니면서 보람을 느꼈던 일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

“하루에 두 번 강연을 갈 때도 있고, 부산 등 지방으로 강연을 갈 때도 있다. 주로 강연 대상은 젊은 엄마들이고, 교장 연수 때나 동네 주민들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러 가기도 한다. 언젠가 교장 연수받는 분들에게 강연을 했는데 평생 교단에 있었던 그분들이 국어, 영어, 수학은 열심히 가르쳤지만 늘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인성교육이라며 무릎을 치더라. 그래서 지금은 전국의 퇴직교장 70여명 정도가 자발적으로 인성교육 봉사에 동참하고 있다. 인성교육을 실천한 뒤 아이들이 게임 대신 책을 보기 시작했다는 등 성공 사례들을 많이 들었고, 그걸 엮어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책도 냈다.”

-퇴계학연구원 이사장과 박약회(유학문화 계몽을 위해 2003년 설립된 단체) 회장도 맡고 있는데 원래 유학 쪽에 관심이 많았나.

“어려서 말을 배우는 동시에 한문을 배웠다. 어머니 품에 안겨있던 기억보다 할아버지랑 같이 지낸 추억이 많다. 할아버지한테 소학, 대학, 중용 등 한문공부를 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지고 밑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 조상들의 교훈이기도 하다. 500년 된 경북 영덕의 우리 집은 미완성집인데 우리나라 주요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기와지붕을 이으면서 앙토를 안 해 나무와 새끼줄이 그대로 드러나고 대문채도 없다. 끝장을 보지 말고 여유를 두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이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삼보컴퓨터를 운영하면서 신입사원들이 들어올 때마다 할아버지의 교훈을 들려줬다. 시골의 농업고등학교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사업 쪽엔 어떤 선배도, 아무런 ‘빽’도 없던 내가 사업을 하게 된 것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좇았기 때문이다. 밑지고 살았더니 돈 있는 사람은 돈을 투자하겠다고 나서고, 기술 있는 사람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삼보컴퓨터다.”

-1980년 청계천에서 6명의 동업자와 함께 자본금 1000만원으로 삼보컴퓨터를 시작했다. 그게 국내 최초의 PC 회사였고, 초고속인터넷업체 두루넷도 설립했다.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나와서 세상이 바뀔 때까지 60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쇄술, 증기기관차, IT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내 생각엔 IT는 획기적 기술이 나오면 10년 안에 바뀐다. 1970년 미국에서 IC(집적회로)가 개발돼 건물만한 컴퓨터가 작아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때는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없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컴퓨터(PC)를 만들었다면 부동의 세계 1위가 됐을 거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컴퓨터 국산화연구실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1980년까지 정부와 삼성, 금성사 등 대기업들을 쫓아다니며 돈이 된다고 얘기해도 설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컴퓨터 제조회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삼보컴퓨터는 연 4조원 매출을 올리고, 세계 7개 지역에 생산시설을 갖추는 등 승승장구했었는데 몰락하게 된 원인은 뭔가. 그리고 지난 8월 차남인 이홍선 사장이 법정관리 7년 만에 채권단으로부터 TG삼보컴퓨터를 인수했는데 어떤 경영 조언을 했는지.

“1996년 한국전력의 통신망을 이용하는 두루넷을 설립해 삼보컴퓨터가 운영하게 됐다. 체신부도, KT도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성공했다. 국내 기업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했는데 주식총액이 현대자동차와 LG전자 주식총액을 합친 것만큼 많았다. 새 정부 들어서면서 재벌 문어발 확장이 금지됐고, 공기업 한전은 파워콤이란 통신자회사를 만들게 됐다. 문어발 확장을 못하게 하니 KT가 통신망을 깔아주지 않아 미국 월스트리트에 가서 돈을 빌려 선을 깔았다. 파워콤 설립은 두루넷과의 계약 위반이다. 두루넷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담보를 섰던 삼보컴퓨터도 어려워지게 됐다. 아들에게는 품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얘기한다.”

-IT 산업의 미래 전망과 벤처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현재의 IT 산업은 모든 산업의 뿌리다. 휴대전화는 말할 것도 없이 배를 만드는 데도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요하고 전투기 값의 60∼70%가 소프트웨어 값이다. 모든 기계가 IT에 기반을 두고 있고 교육 의료 통신 교통 경쟁력이 소프트웨어 IT에서 나온다. 모든 것의 핵심은 IT다. 결국 앞으로 국가경쟁력은 IT가 좌우한다. 그런 점에서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없애버린 것은 말이 안 된다. IT 산업은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매우 중요하다. 더 경쟁력을 높이고 선진국이 되려면 IT를 잘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 세상의 경쟁력은 사람들의 두뇌 싸움이다. 자원이 많거나 시장이 넓어야 강국이 되던 시절은 지났다. 결국은 창의적이면서도 기업가 정신이 강한 인재를 가진 나라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 경쟁력은 이노베이션(혁신)에서 나오는데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가 실리콘밸리가 아닌 우리나라라고 했다. 정부 시책은 중요한 산업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벤처사업은 10명 중 9명이 망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망하는 거는 당연한 거다. 미국에선 회사가 망해도 벤처사업을 한 사람은 재기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벤처사업을 할 때 리스크를 면제해주고 두 번 세 번 다시 일어설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벤처창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선배 멘토를 구해라. 경험이 많고 은퇴한 기업가들과 청년들을 정부가 연결해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벤처사업가로 성공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도 대권 주자로 나섰다. 어떻게 보시는지.

“지금 대통령할 사람은 누구든지 두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10년, 20년 뒤 이런 나라로 만들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들을 계몽하고 에너지를 결집해 그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한다. 또 교육 개혁을 해서 인성교육이 중요시되고 인성교육 잘 받은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대선 주자들에게선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고 눈앞의 얄팍한 이익에 기대서 표를 얻으려고만 한다. 30년쯤 뒤에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 대통령 공부를 착실히 하고 대통령 되기 위한 길을 닦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1998년부터 숙명여대 이사장을 맡아왔는데 지난 3월 사립학교법 위반으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임원승인 취소처분을 받았다가 법원의 무효 결정으로 복귀하는 등 내홍이 컸다. 올해 안에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숙대 사태는 다 마무리된 건가.

“숙대 이사들은 월급 한 푼 받은 일도 없고, 비용 한 푼 쓴 일 없이 오로지 봉사활동만 했는데 불순한 세력들이 있지도 않은 말들을 만들어내며 분란을 일으켰다. 법원으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아 명예가 회복됐고 이제 다 끝났다. 약속대로 연말에 물러날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내 인생의 목표는 인성교육 확산에 힘쓰는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가정이 한 달에 한 시간씩 가족회의를 통해 새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듯하고 친절한 그런 나라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에겐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주변에선 “나이 80이 됐으면 조용히 앉아있을 일이지 뭘 그리 돌아다니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힘 있는 데까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얘기하는 이 전 회장에게서 결기가 느껴졌다. 그는 인성교육 덕분에 20년 뒤 인생의 낙오자가 될 사람들이 낙오자가 되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20년 뒤 세상에 대한 분노로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이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1시간30분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한 중학교에서 있을 오후 강연을 위해 서둘러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황폐한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바꾸고 싶은 노신사의 열정을 봤다.

이용태 전 회장은

△서울대 문리과 졸업 △미국 유타대 대학원 이학박사 △유타대 비롯, 한·미·중·러시아 7개 대학교 명예박사 △전 이화여대 교수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전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 위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겸 교육위원장 △전 도산서원 원장 △전 삼보컴퓨터 회장 △전 두루넷 사장 △전 데이콤 사장 △학교법인 숙명학원 이사장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박약회 회장

만난사람=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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