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 기초과학은 창의성의 보고 기사의 사진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일을 주기적으로 겪는다. 10월 초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이번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 기대를 하다가 결국 무산되면서 집단적으로 실망감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일본인과 중국인이 노벨 과학상과 문학상을 받으면서 더욱 실망감이 커진 느낌이 있다. 일본은 이번 수상으로 과학 분야 수상자만 16명이 되었는데, 아직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한명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자존심의 문제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실망감에 지쳤는지 얼마 전 한 지인이 “도대체 노벨상이 무엇이기에 온 국민이 매달리는 거야? 그럴 가치나 의미는 있는 거야”라고 묻기까지 했다. 노벨상은 인류 발전에 공헌한 개인 혹은 단체에게 수여한다. 특히 노벨과학상은 물리, 화학, 생리·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주도록 노벨의 유언장에 기록되어 있다. 기초과학 분야의 중요한 업적은 주로 논문으로 발표되며 당장 실용화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이 바로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거나 국력 상승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 나라가 노벨상 수상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국격의 문제다. 개인이 인격을 가지듯 국가도 품위와 격을 말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 수는 바로 학문과 문화 분야에서 국가의 품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 한국이 단순히 물건을 잘 만들어 팔아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화와 지적 자산에 기여하는 진정한 선진국가로 발전했다는 점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로는 창의(創意) 국가로서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21세기 글로벌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은 개인의 창의력을 얼마나 잘 북돋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애플이나 페이스북의 성공은 이런 점을 극명히 보여준다. 기초과학은 개인의 창의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다. 한 나라의 기초과학이 노벨상을 받을 수준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준 높은 창의 국가로 발전했다는 점을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노벨상과 무관하게 우리나라는 기초과학 육성이 매우 절실한 과제다. 그동안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고 변형해 세계에서 알아주는 산업경쟁력을 갖추었지만 이제 선진국을 따라가는 전략으로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선진국과의 특허권 분쟁은 점점 심해지고, 후발국들은 급속히 따라와 우리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제는 우리만의 고유한 원천기술을 개발해 선진국과의 특허분쟁을 해소하고, 후발국과의 격차를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고유 원천기술을 개발하려면 그 기본이 되는 기초과학을 육성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남이 안 해본 새로운 시도를 과감히 하는 풍토를 확립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새로운 지식과 통찰력이 있어야 우리 고유의 원천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현장은 아직도 응용기술개발 위주이고, 제도와 정책이 장기적이고 모험적인 기초연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됐다. 기초과학연구원이 성공하면 우리의 기초과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격상될 것이고, 나아가 노벨과학상 수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노벨상 수상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초과학 연구시스템이 탄탄하게 확립되어 노벨위원회가 주목할 획기적인 발견·발명이 꾸준히 나온다면 우리 민족은 선진 문화민족으로 존경받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의 미래 국가경쟁력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세정(기초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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