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호 칼럼] 싸이, 냉정과 열정 사이 기사의 사진

“쌈마이로 갈 데까지 가 보겠다고? 쳐다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국제 스타덤에 오른 싸이의 활약이 눈부시다. 국내에서 주변부에 맴돌던 그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 있었다. 이 현상의 실체를 놓고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그의 노래는 유튜브와 아이튠즈를 석권하고 급기야 빌보드 1위를 넘보는 단계에 도달했다. 싸이의 노래와 춤이 간밤의 메밀꽃처럼 지구촌을 덮은 것이다.

다만 분위기에 홀려 공사(公私)의 질서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사적 영역에서야 침이 마르게 칭찬해도 좋다. 나도 박수를 친다. 무엇보다 한 개인의 뜨거운 열정에 주목한다. 대마초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거나, 본인 과실로 군대를 두 번이나 갔다 온 사람은 좀 위축되기 마련인데도 그는 늘 유쾌했다. 잇따른 군부대 위문공연을 마다 않은 데서 보듯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놀랍다.

‘강남스타일’의 콘텐츠도 시대와 코드를 맞췄다. 단순한 멜로디이면서도 육성과 전자음에 적절한 리듬감을 줘 신나는 춤곡으로 만들었다. 말춤만 해도 그렇다. 지금까지 수많은 패러디를 봐도 싸이가 춰야 제격이다. 느끼한 얼굴, 동백기름으로 나눈 듯한 가르마, 축 처진 아랫배, 거기서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엇박자로 놀아나는 모습은 영락없이 광대의 몸짓이다. 요정 손연재도,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감히 따라갈 수 없다.

미디어를 활용한 부분은 운이 좋았다. 유튜브 같은 SNS뿐만 아니라 CNN이나 NBC 같은 미국의 주류언론이 조명함으로써 콘텐츠의 품질을 보증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B급 정서’를 담은 가무가 ‘A급 미디어’를 타면서 ‘S급 콘텐츠’로 격상된 것이다. 여기에 싸이의 영어구사 능력이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Dress classy, dance cheesy!”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는 냉정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행정기관의 오버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지난 주말 싸이의 2010년 발표곡 ‘라잇 나우(Right Now)’에 대해 19금(禁) 딱지를 떼 줬다. 문제의 가사는 “웃기고 앉았네, 아주 놀고 자빠졌네, 아주 생쇼를 하네”라는 부분이다. 여기에 새로 만든 심의세칙을 적용해 보니 청소년 정서를 해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건 대중문화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다.

언론에서도 이 정도면 비속어로 보고 ‘×’로 표시한다. 방송에서는 효과음으로 처리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음반심의에서 ‘19금’은 ‘19세’가 아니라 ‘19세 이하’를 지칭한다. 가요시장의 파워풀한 소비집단인 중학생이 포함된다. 음악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의 귀에 대고 이런 가사를 반복해서 들려주면 뇌리에 각인되고 나중에는 자연스레 읊조리게 된다.

비속어의 공적 유통을 허용한다는 것은 청소년 보호라는 정책목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어린이가 부모나 선생님에게 대꾸하면서 “놀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사용토록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청소년 자살사건이 일어날 때는 미디어를 탓하다가 미디어에 실린 내용을 살피는 대목에서 몸을 사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여성부는 노랫말 속 비속어 사용의 둑을 허문 데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4일 서울광장 공연 역시 중심 잃은 행정의 대표적 사례다. 싸이가 빌보드 1위를 눈앞에 둔 시점에 “발표 당일 웃통을 벗고 무료공연을 하겠다”고 밝혔고, 박원순 시장이 호응하면서 즉흥적으로 시 예산이 투입돼 공연이 이뤄졌다. 애초에 이곳에 잡혀있던 하이서울 페스티벌 공연은 이런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울분을 삼키며 날짜를 옮겨야 했다.

싸이의 처신도 찬찬히 돌아볼 때다. 대마초를 피워 검찰에 기소된 적이 있고, 본인 잘못으로 재입대를 했다. 우리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아무데서나, 수많은 어린이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데도,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켜서는 안 된다. 그걸 계기로 술 광고를 찍고, 다시 술 깨는 음료광고를 찍어서야 되겠나. 글로벌 스타의 지위에 걸맞은 책임이 필요하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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