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16) 리얼라이프 기사의 사진

리얼라이프 (필 맥그로, 이경식 역, 문학동네)

내 아내는 소설가다. 그런 그녀가 아침 신문을 펼칠 때마다 한숨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도저히 소설가적 상상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매일이다시피 신문을 펼칠 때마다 올라오는 끔찍하고 엽기적인 일들을 소설가가 소설로 쓴다면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탁월한 상상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현실은 이미 소설적, 아니 그 이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런 형편이고 보니 가끔은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지 또한 현실감 없이 가물가물 들려오게 된다. 삶의 현장은 달아오르고 현실은 가열하다.

그래서 산다는 일은 처연하고 때로는 장엄하며 때로는 애달프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무엇보다 눈물겹다. 얼마 전 앞다퉈 두 명의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사람은 친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제자였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간암 말기라고 했다. 한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이 노랗게 물든 것 같다고 했다.

그 얼마 전에는 착실한 중견기업인이 갑자기 구속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길가의 거지도 그냥 못 지나칠 만큼 심성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지인들의 절망적 사연들을 접하면서 삶의 실제 상황이란 참으로 만만치 않은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제대로 서서 하늘을 향해 가려면 매순간 백색 순교를 요구당해야 할 정도이다.

세계 최고의 IT강국 한국은 소돔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 삶의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이다. 임상 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저자가 주로 벼랑 끝에 선 인생들을 바라보며 던지는 조언들로 꾸며져 있다.

그런데 한번의 강의에 수억원을 받는다는 이 유명 강사의 조언들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보고 들은 뻔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가 이미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라는 명망을 얻은 데다가 백색 가운을 입은 의사로 맏형이나 큰오빠처럼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사랑의 상실과 아픔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더 많이, 더 열렬히 사랑할수록 더 큰 상처와 상실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상실과 상처 없는 사랑은 기대하지 말라는 식이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가끔은 심장을 파열시킬 만한 언덕을 만나게 되니 쉽게 갈 생각 또한 아예 하지 말라고 말한다.

폭풍의 날이 당신의 엉덩이를 걷어차기 전에 바짝 정신차려 현실주의자가 되라고 전하며 생애 최악의 날이 온다 해도 그 폭풍 속으로 걸어가며 일단 살아남으라고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일단 오늘만 살아나서 버티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정나미가 떨어지는 훈육교사 같은 데도 있지만 결국에는 넘어진 사람에게 “괜찮아, 다시 일어서봐” 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듯 격려하고 힘을 주는 내용의 연속이다. 인생을 운동경기에 비유하고 그 경기장의 선수를 응원하는 코치와 같이 말한다. 운동하여 스스로 악착같이 몸을 챙길 뿐더러 기도하여 영혼을 돌보라고.

서점가에 ‘위로서’가 뜬다고 한다. 삶이 힘겨울수록 위로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괜찮아…’류의 책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이지만 저자는 그런 점에서 ‘임상학적 위로서’의 선두주자라 할 만하다.

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생 트레이너의 지침대로라면 소설가도 따라잡기 어려운 힘든 삶이라 할지라도 한번 살아볼 만하다는 전의를 불태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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