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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염성덕] 재능 기부의 위력

[여의춘추-염성덕] 재능 기부의 위력 기사의 사진

“사랑과 헌신 실천하는 이들이 우리의 선한 이웃…내년엔 더 많아지기를”

대학생들이 경쟁적으로 농촌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1970∼80년대였다. 대학생들은 ‘농촌현장에 들어가 농민과의 만남을 통해 모순의 척결을 지향하는 집단적이고 의식적인 활동’을 농활(農活)로 정의했다.

제5공화국 정부는 83년부터 농활을 농민의식화 활동이라는 이유로 규제했다. 정부 지시를 받은 이장이 농활을 방해했고, 경찰은 대학생들이 방문한 마을의 동태 파악에 나섰다. 90년대 중반부터 일부 대학이 농활에 참여한 학생에게 학점을 주기도 했다.

농활을 떠올리게 된 것은 올해 농어촌에서 펼쳐진 재능 기부 활동과 관련한 개인·단체 부문의 수기 132편을 심사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 주도로 경영·마케팅, 복지·교육·문화, 지역개발, 농림어업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 기부가 이뤄졌다. 대학생 위주였던 과거의 농활이 청소년들과 성인들까지 동참하는 재능 기부로 확대된 것이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탓에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어르신들에게 미술수업을 하고, 그들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준 일가족이 있는가 하면 어린 딸과 조카를 데리고 봉사활동에 나선 여성도 있었다. 용인외고 3학년생들은 짬을 내서 길이 72m, 높이 4m인 터널의 양쪽 벽면에 화사한 벽화를 그렸다. 1등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재능 기부는 남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퇴근한 후에 5개 농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컨설팅을 한 공무원의 이야기도 큰 울림을 주었다. 그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브랜드 개발에 성공한 농가들이 기부한 농산물의 판매대금으로 기부금을 만들어 더 큰 나눔을 실천하려는 기부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태풍으로 경남 거창군의 사과가 수없이 떨어졌을 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기부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도 입증됐다. 낙과 피해 상황을 담은 내용과 웹포스터를 페이스북에 올린 결과 몇 시간 만에 준비된 낙과가 동이 났다는 것이다. 낙과를 맛본 이들이 SNS에 글을 올려 ‘거창사과’라는 브랜드 홍보 효과도 상당했다고 한다.

수기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두 편이었다. 한 편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이 교육 재능을 기부해 자살까지 생각한 여중생에게 미술치료사와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도록 이끈 ‘우울한 두 소녀의 성장기’였다. 이 여성은 약 8개월간 여중생과 함께한 시간이 결국 자신을 치유하고 보듬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여중생의 ‘영혼’을 살린 것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 셈이다.

다른 한 편은 4년 전부터 경기도 대부도에 있는 한 염전을 찾아가 홍보 활동, 온라인 판로 개척, 유통망 구축 등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준 ‘대학생들의 염전 살리기 프로젝트-연(然)’이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염부들도 대학생들의 프로젝트에 동참한 결과, 소금 판매량과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만 손에 쥐었던 염부들의 가난한 삶을 변화시킨 대학생들의 재능 기부는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각장애인의 안내자가 된 외국인노동자, 이·미용 봉사활동에 나선 다문화 여성의 이야기는 기부에 인색한 이들을 향해 동참을 호소하는 손짓인 듯했다. 봉사자들이 산뜻하게 도배해준 방을 보고 “죽은 영감이 (살아) 오면 집을 못 찾겠다”는 한 할머니의 말만큼 재능 기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남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제 것을 나눠주고, 공유하는 재능 기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재능 기부자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따뜻하고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어린이부터 정년퇴직한 이들까지 기부 행렬에 나선 것을 보면서 희망의 등불을 보게 된다.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는 재능 기부자들이 우리의 선한 이웃임을 굳게 믿는다. 내년에는 재능을 기부하면서 자신의 행복도 찾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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