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18) 모자란 위안 기사의 사진

모자란 위안(도널드 맥컬로우, 윤종석 옮김, IVP)

교회에서 안 입는 옷을 가져오라고 해서 옷장을 정리하다가 놀란 적이 있다. 도대체 이 많은 옷이며 넥타이를 언제 다 사들였단 말인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중에는 평생토록 한두 번 걸쳐 보았을까 말까 한 것들도 있었다.

옷뿐이 아니었다. 학교 연구실이며 집의 서재에 가득 찬 책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첫 페이지도 넘겨보지 못한 채 수년 동안 버젓이 책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버리자니 언젠가 볼 것 같아서 그냥 꽂아둔 것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옥죄어오는 물건들은 옷과 책만이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사온 물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끌어모은 별의별 잡동사니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여 요지부동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정리를 하고나도 몇 해가 지나면 다시 그 모양이었다. 이제는 진주해오는 적군들처럼 사뭇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언젠가 법정스님이 기거했던 방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정갈한 찻상 하나밖에 없는 빈방이었다. 햇빛으로 환한 그 방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로 맑은 솔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구의 어느 쪽에선가는 모자람으로 허덕이는데 다른 어느 쪽에서는 넘쳐남으로 비명을 지른다. 하루 한 끼가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넘치는 체중을 주체 못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쪽이 있다. ‘한달에 8㎏ 감량!’ 같은 광고 전단지는 이제 식상할 정도이다.

이 책은 욕망의 블랙홀을 채우느라 급급하기보다는 차라리 부족하고 빈 채로 두는 것이 행복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누가 모르랴. 실행이 안 돼서 문제인데, 조목조목, 채우면 채우려 할수록 왜 더 큰 부족감에 허덕여야 하는가를 풀이해주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욕망 메커니즘을 응시하지 않으면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 흐름에 떠밀려가며 부족감은 불행감으로 이어질 것임을 경고한다.

그런데 더 크게, 더 많이, 더 화려하게는 교회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구나 교회는 그 모든 넘쳐남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용서될뿐더러 권장되기까지 한다.

우리들의 주인 되시는 예수께서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건만 그 가르침을 받은 우리는 스승이 바라보던 쪽과는 다른 방향을 향한 지 오래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모든 넘쳐남의 배후에는 인정받고 뽐내고 싶은, 그리고 통제하고 지배하고 싶은 유치찬란한 자아가 숨어있다고 직시한다. 그 자아는 풍요가 우리를 보호할 뿐더러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 자신이 학위를 계속 따고 큰 교회를 이끌고 신학교 총장이 되고 전국적인 강사와 설교자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집필하는 것도 다분히 그 유아적 자아가 발동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일련의 행위였노라고 고백한다. 예컨대 뽐내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불길을 댕겨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욕망의 불길은 태울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삼키고도 남는 포식자여서 만족을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재물이건 지위건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부리고 더 많이 종속화시키기 위해 몰아가다가 결국 자신마저 탈진시켜버린다고 했다. 위장을 70%만 채우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만고불변의 법칙이건만 고삐 풀린 욕망은 아랑곳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채우려 말고 모자란 채 만족하라는 것이다. 모자랄 때 감사하고 여유가 생기며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의 미학처럼 모자람을 소중히 하고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더불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욕망의 동굴이 동굴인 채로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할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이 책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나님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공허공간이기 때문에 비워둔 채 그분의 임재로 채워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 되시는 그분으로 채워질 때에라야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블랙홀은 비로소 넘치는 충만 상태가 된다는 것. 그 경지가 되면 초막이든 궁궐이든 욕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경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이 포기하고 더 많이 내려놓을수록 더 많이 자유스럽고 더 많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리라는 것. 이 책이 일깨워 준 평범하지만 소중한 지혜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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