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북한에 어떤 바람이 불게 할까 기사의 사진

“북한 사회에 지성이 싹트도록 돕는 것이 중요… 살벌한 대북전단은 효과 없다”

지금은 약간 달라졌겠지만 2002년 전쟁 직후의 아프가니스탄이 떠오른다. 전국의 도로는 시속 50㎞ 이상의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파여 있었고, 탈레반이 집권한 5년 동안 전국의 모든 학교가 폐쇄된 탓에 제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이동할 능력이 있는 사람과 식자층은 이미 국경을 넘어간 상황이었다. 그곳에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돌을 나르던 한국 기아대책기구 봉사단원들의 땀은 숭고한 눈물처럼 반짝거렸다.

그 땀방울이 생각난 것은 지난달 22일 탈북단체들이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밝히자 북한이 남측을 향해 포격하겠다고 맞섬으로써 긴장이 고조될 때였다. 북한 인권을 신장시키고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평화의 참모습을 알려줘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거 유신 시절에 식자층에서 독재정치와 인권유린의 참상을 해외에 알리려고 힘썼던 노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에게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알려 줄 것인지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탈북단체가 만든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이 인권과 자유의식을 각성케 하는 미디어로서의 기능은 기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전단의 내용은 선동적 구호와 김정일 가문에 대한 저주·욕설로 가득 차 있다. 탈북자들이 경험한 자유세계와 인권의 고귀함을 알려주는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알 같은 글씨로 욕설적 구호를 가득 늘어놓은 것이 전부다. 그것을 보내기 위해 북한과 전쟁을 불사하는 실랑이를 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력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얼마 전에는 탈북자 출신으로 박사가 된 한 인사가 공개한 북한 주민의 편지를 본 적이 있다. 북한노동당 신의주 지방당원이라는 주민이 보낸 편지는 내용이 너무 거칠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외부세계로 보낸 글이 왜 이렇게 호소력이 없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굶주림 때문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의 고통’을 겪는 북한 주민이 미지의 세계에 보내는 호소 편지라면 읽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정도의 감동은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살벌함만이 가득한 이 두 경우의 문서에서 보듯 이것이 북한 주민의 수준과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실로 인권과 자유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북한에 김일성대학이 있고 그들이 자랑하는 12년제 의무교육이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의 정서가 저렇게 조악하다면 북한에 집단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학교가 폐쇄된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이나 인문적 지성이 싹틀 여지가 없는 북한은 거기가 거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 단절의 장기화로 인해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남북당국 간 대화 창구가 폐쇄돼 있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북교역 중단으로 북한경제에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으며 남북경협 기업들의 재정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인도적 지원과 학술교류도 완전 중단된 상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차기정부의 대북정책 과제’라는 보고서를 보면 북한관련 전문가 1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전원이 현재의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각 부문별 문항 중에서 가장 찬성률이 높은 항목은 98.2%의 ‘인도적 지원 및 남북교류’다.

이런 결과가 말해주듯 우리의 대북관계는 북한 민간의 지성을 싹틔우는 쪽으로 펼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 지성계에 인문학적 씨앗을 뿌리는 작업은 근원적으로 내일의 남북관계를 선순환하게 만드는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지성은 인간에게 가해지는 물질적 경제적 사상적 압력을 자각하게 만들고, 그런 억압에 반성하며 맞서게 하는 힘을 키우게 한다. 그런 기운이 돋아날 때 독재 정권에 의한 사회 전체의 마비현상은 감각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편집인 so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