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제] 방송독립의 조건 기사의 사진

기회다. 주요 대선후보들 모두 집권하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몸살을 앓아왔다. 이 정부에서는 한국방송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는 170일 장기 파업이 현안이 되었다. 정치권에 휘둘리는 방송파행으로 공영방송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난맥을 겪고 있는 공영방송제도와 운영을 미래형으로 고쳐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공영방송 제도개선을 위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공영방송위원회 설치, 여야 추천비율조정을 포함한 이사회 지배구조 개선, 사장 추천 시 야당 추천 이사의 최소 동의를 보장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등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심지어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관여하지 못하게 법제를 고치자는 의견도 나왔다. 여당의원에 의해 ‘낙하산 사장방지법’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제 제도를 고치려는 시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초유의 공영방송 파업을 중단하면서 약속했던 언론청문회도 대선정국에 가려 흐지부지된 듯하다. 제도개선 없이 한국방송 사장 임명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적격자 논란은 차치하고 임기 말 대통령이 임기 보장이 불투명한 새 사장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정권 재창출에 기여하면 임기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정치권과 공영방송 사장의 기묘한 이해관계가 엿보인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공영방송 주인인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대선 선거전략 가운데 작은 지류쯤으로 평가되는 양상이다. 물론 지속되는 저성장 경제 기조 아래서 공영방송 제도개선은 후순위 관심사일 수 있다. 자녀교육,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전셋값 인상과 가계부채, 그리고 노후대비 등이 오히려 피부에 와 닿는 현안일 수 있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이들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건강한 권력견제와 여론형성 기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공영방송 사장은 국민 모두를 위해 자신을 임명한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넘어 감시와 비판을 행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제도로는 공정한 공영방송을 지켜내기 어렵다는 점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었다. 규제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 공영방송 이사, 그리고 사장을 추천하는 기구 구성에 있어서 여야가 국민을 대표한다는 생각도 이미 과거의 낡은 생각이 되어 버렸다. 주요 대선후보들이 밝히고 있는 바대로 공영방송 사장 임면은 대선 승자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

따라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제도 개선은 여야의 틀을 넘어서 보다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선거전의 전리품으로 여겨서는 해법이 나오지 않을 뿐더러 새 정권에도 부담이 될 게 뻔하다. 더불어 지배구조 참여자의 수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독일 유력 공영방송(ZDF)의 사장 임면과 운영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77명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와 무관한 전문가를 사장으로 임명하는 절차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다행스럽게도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 대선후보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공영방송 제도 개선이 대선에 앞서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당장 개선이 어렵다면 대선공약에서 실현가능한 개선안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라도 공영방송을 지키는 국민의 행동이 필요한 때다. 공영방송 파행의 최대 피해자는 주인인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이만제 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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