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대한민국 교육봉사단 우창록 이사장 “조국 미래 위해 청소년에 ‘사랑의 씨앗’ 뿌려야” 기사의 사진

중학생은 청소년기의 급소다. 자살과 학교폭력에서 중학생의 희생이 가장 크다. 지난 10월만 해도 경기도 광명, 경남 마산, 경북 포항 등에서 나이 어린 중학생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일부는 이성 문제로 고민하거나 우울증을 앓은 흔적이 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단괴롭힘의 주 무대도 중학교다. 중학생의 일탈이 청소년 문제의 최대 과제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중학생들의 문제점을 일찍이 간파하고 해법을 찾아 나선 곳이 대한민국 교육봉사단이다.

이 단체는 정체성 혼란이 중학생 문제의 핵심으로 보고 멘토 서비스를 통해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자원봉사에 나선 대학생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중학생을 1대 1로 만나 전인적 돌봄과 맞춤 학습을 지원해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단체의 우창록(59·법무법인 율촌 대표) 이사장은 2009년에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주인공. 한국리더십학교, 기독경영연구원, 좋은교사운동, 한빛누리재단, 교육복지연구소 등과 뜻을 규합한 뒤 ‘나눔과 동행을 통한 변화’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씨드스쿨(Seed School)을 만들었다. 미국의 비영리교육단체 TFA(Teach For America)를 모델 삼아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내 자신의 삶을 꽃피워 나가도록 돕는다.

“중학생은 자아정체성에서 큰 혼란을 느끼는 시기입니다. 예전에는 평범한 성장기에 불과했으나 사회가 변하면서 지금은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나이가 됐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앞당겨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전인교육을 하는 초등학교와 입시교육이 위주인 고교 사이의 어정쩡한 지대에서 소외받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된 것은 그만큼 관심이 절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씨드스쿨은 교사훈련을 받은 자원봉사 대학생(T)들이 중학교를 찾아가 차상위계층 출신의 문제학생들을 만나 내면의 성장을 돕는다. 학습의 동기를 부여하고 고민을 상담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1년이 지나면 멘토와 멘티가 강력한 사랑의 끈으로 이어져 형제자매처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팀도 적지 않다. 고무적인 것은 이런 활동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교실 분위기를 밝게 만든 나머지 학교폭력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지난 학기 한 학교의 수료식에 갔다가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학생이 큰일을 저지를 뻔하였는데, 학생이 자기의 T에게 심경을 토로하였고, T가 학교에 새벽 5시 반에 연락해 큰일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큰일’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자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하소연할 곳이 없는 어려움을 자기의 T에게 털어놓았던 것이지요.”

씨드스쿨의 명성이 높아지자 전국 곳곳에서 신청이 몰려들고 있다. 제도교육의 틈새가 그만큼 넓다는 증거다. 현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곳은 지역과 교회를 합쳐서 10개 정도. 파일럿 프로젝트 단계를 벗어나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교사가 부족하고 예산도 달려 다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학교와 교회, 기업을 연결하기 위한 우 이사장의 발길이 더욱 분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과거의 상황 때문에 미래가 불행해진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요. 더욱이 교육 양극화가 깊어지다 보니 취약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은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누군가 손을 잡지 않으면 세상을 놓아 버리는 것이지요. 요즘 아이들에게 영혼의 양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그렇습니다.”

우 이사장의 이 같은 헌신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랄 때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 준 멘토를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은 졸업 후 공장에 취직이나 하겠다며 멀뚱멀뚱 놀던 그에게 돈이 없이도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일본에서 나온 수학문제집을 손에 쥐어주며 상급학교 진학을 독려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우 이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처음부터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파격행보로 유명했다. 판사는 너무 보수적이라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격과 맞지 않았고, 검사는 상명하복의 엄격한 질서가 싫어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권력보다 봉사의 삶을 좀 더 일찍 시작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의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김앤장에서 출발해 지금은 국내 5대 로펌으로 성장시킬 만큼 성공한 법률가이면서도 구석진 곳에 붉을 밝히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씨드스쿨에 이어 굿소사이어티 이사장을 맡은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이 긴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인섭 변호사가 창립한 이곳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한편 문화적 다원주의의 수용 등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성숙한 토론문화를 만드는 것도 목표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한 나라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성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책임 있는 주류가 형성돼 스스로 이룩한 업적에 대해 자신 있게 설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지요. 나라와 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원칙의 중요성을 망각하다 보니 공동체의 가치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이광요 평전’ 독후감을 전했다. “이광요가 집권한 뒤에 공산당이 득세하면서 소수당으로 전락했지요. 그 당시 연정(聯政)을 하면 재집권을 해서 철옹성 같은 권력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포기합니다. 연정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버리는 것이니까요. 용기 있는 선택이지요. 우리는 어떤가요? 지도자들이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기보다 시대정신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이어온 신앙의 중심을 강건하게 지키고 있다. 대학시절 이후 줄곧 서울중앙교회에 출석하는 그는 한동안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펼친 뒤 최근에는 문화선교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기독영화제에 이사로 참여한 것도 선교라는 것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영상문화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용기를 냈다.

“선교든 봉사든 꿈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했듯이 세계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대로 존재하게 마련이거든요. 자그마한 화단에 몇 톨의 씨앗을 뿌리는 것도 잎과 열매에 대한 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씨앗이 열매에 이르는 데 도움을 주는 물과 바람과 햇빛에 대해서는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요. 사람과 사회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창록 이사장은

195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문화중·고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해군 법무관으로 근무했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했으며 이후 법무법인 율촌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감사, 한민족복지재단 이사, 기독교윤리운동실천운동 이사장 등을 지냈다. 지금은 대한민국 교육봉사단과 굿소사이어티 이사장을 맡고 있다.

만난사람=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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