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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송세영] 안티기독교와 증오범죄

[삶의 향기-송세영] 안티기독교와 증오범죄 기사의 사진

안티기독교의 양상이 심상찮다. 일부 문제 있는 교회나 목회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 기독교 전체에 대한 비난과 야유, 저주와 모욕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되는 글들을 보면 눈을 의심할 정도다. 글을 읽다 보면 유대인을 말살하려 한 독일의 나치들, 유색인종들에게 테러를 일삼은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인종이나 민족, 종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증오범죄(hate crime)라 부른다. 문명국들은 증오범죄를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예방과 차단을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증오범죄로 귀결되거나 이를 조장할 수 있는 표현이나 행동들에 대해서도 철저히 감시한다. 인종이나 민족, 종교에 따른 증오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보장에서도 예외다.

극단적, 모욕적 표현 너무 많아

우리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안티기독교 세력들의 표현과 논리에는 증오범죄로 이어지거나 이를 조장할 수 있는 소지가 너무 많다. ‘개독’이니 ‘먹사’니 하는 모욕적 표현들은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다. 말살, 박멸, 타도 같은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표현들이 난무한다.

윌러드 게일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에 따르면 증오는 ‘지속적인 격노의 감정’이다. 증오를 갖게 되면 일상생활 대부분을 이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지내고, 증오의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괴롭히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증오는 또 강박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서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있는 셈이다. 증오는 개인의 감정에 머물지도 않는다. 증오의 대상을 괴롭히고 공격하기 위해 동조자를 찾는다. 증오의 감정은 선동되고 유포돼 집단이 되고 세력이 된다. 증오범죄가 잔혹성과 함께 집단성을 띠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증오는 합리적 비판이나 정당한 분노와 구별돼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비판받고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끝없이 표출되는 증오까지 용인하고 감내해야 할 이유는 없다. 개인적 자세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용인하면 우리 사회가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 증오는 증오를 부르고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부르기 때문이다. 몇몇 연예인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악플러들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집단적 폭력적 언어테러로 상대방을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았다. 안티기독교 세력과 악플러들은 증오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에 행동 양태도 비슷하다.

합리적 비판과는 구별돼야

‘인터넷은 원래 그렇다’거나 ‘잘못을 한 건 사실 아니냐’는 식의 대처는 너무 안이하고 순진하다. 증오를 방조하고 증오범죄를 조장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합리적 문제제기를 넘어선 증오의 표출에 대해서는 법절차를 밟아서라도 과단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잘못한 게 없지 않으니까’ ‘긁어 부스럼 만들 수 있으니까’라며 머뭇거리는 사이 증오의 바이러스는 독버섯처럼 퍼져나간다. 개인의 명예와 감정이 아닌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과감한 조치가 꼭 있어야 한다.

동시에 스스로도 늘 점검해야 한다. 복잡하고 스트레스 심한 현대사회는 증오가 자라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나도 모르게 증오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를 키우고 퍼트리는 숙주 신세가 돼 있을 수 있다. 각별한 주의와 경계가 필요하다.

송세영 종교부 차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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