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19) 행복 요리법 기사의 사진

행복 요리법 (마티유 리카르, 백선희 옮김, 현대문학)

행복을 요리한다고? 도대체 무슨 식재료에 무슨 양념을 넣어 어떻게 요리하는 것일까. 하지만 원래 제목은 요리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이다. 다분히 철학적인데, 예컨대 존재의 이유가 행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어떤 종류의 기분 좋은 감정이거나 강열한 기쁨, 일시적 황홀경 같은 것이다. 예컨대 어떤 마법 같은 순간으로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오래 갈망하던 일의 성취나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 도무지 제한이나 부족함이 없는 풍요와 같은 상태만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햇살이 비쳐드는 숲 속을 거닐거나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눈밭을 걸어 등반을 하거나 불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연과의 조화나 평화로운 순간들로 정의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는 그것을 삶의 매순간에 잠재해 있는 지속적인 충만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위에서 열거한 행복 목록들이 한결같이 ‘왔다가 사라지는’ 혹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임에 반해 그가 내세우는 참된 행복은 모든 조건과 온갖 곡절을 초월하여 영속하도록 있는 그 어떤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은 온갖 미망과 정신적 독소들, 그리고 편견과 지식을 넘어 도달하는 평안의 상태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일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의 순간들과 이 지속적인 마음의 평안, 혹은 잔잔한 기쁨의 상태를 구분 짓는다. 이 두가지의 상태는 차원도, 지속시간도, 깊이도 전혀 다른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이 은은하고 지속적인 기쁨 혹은 평안의 상태는 외부의 조건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몇 번씩이나 강조한다. 그러면서 지옥 같은 감옥에서 12년을 보낸 한 남자가 보여주었던 잔잔한 미소와 역시 25년의 부당한 징역형을 선고받은 한 남자가 8년의 감옥생활 끝에 도달한 ‘행복’의 상태를 예화로 든다.

그런데 그가 존재의 이유로 끝없이 이 참된 행복의 상태를 지향해야 한다고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상태에 도달했을 때라야 만이 참다운 삶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왕왕 행복에 대한 오해 때문에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여기고, 고통의 원천에 다름없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배낭을 메고 히말라야를 등반하듯이 행복을 찾아 길을 나선다. 저명한 철학자인 프랑수아 르벨을 아버지로 두고 약관 스물여섯 살에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적 평화와 지혜를 얻기 위해 행복탐험의 길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티베트의 한 산촌에 도달하게 됐다. 여기서 비로소 수년 동안의 불교적 수련을 통해 참된 행복이 아닌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던 끝에 어떤 충만된 내적 상태를 체험하고 나서 이 책을 쓰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인 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저자가 누차 언급한 참된 행복이라는 것이 기실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책에 그런 언급은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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