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지역대립의 정치 이젠 극복되나 기사의 사진

“악마의 주술 같은 영호남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했다던 DJ 비원이 이뤄지길”

조선시대 정치의 어두운 면으로 첫손 꼽히는 것은 사색당쟁이다. 생각해 보면 서로 다른 주의·주장을 가지고 경쟁을 벌이는 정치방식이 16세기에 벌써 시작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 만하다. 근대 정당의 맹아(萌芽)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의 당파는 정당이 아니라 권력투쟁 집단의 형태로 시작돼 권력 및 이익쟁탈전으로 시종했다. 붕당은 지역 문벌 학맥 등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집단이기주의에 함몰됐다. 그래서 정치적 결사이기는 하되 정책을 겨루는 근대적 정당으로 변화·성장하지 못한 채 생사를 건 제로섬게임을 되풀이해야 했던 것이다.

그 전근대적인 파당의 전통과 행태가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의 정당들에 이어졌다. 이름은 그럴듯하게 정당을 표방했으나 내용은 왕조시대의 붕당이나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정치적 철학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결사가 아니라 지연 학연 혈연 등 개인적 연고를 중심으로 뭉친 이익 집단이었다.

당초에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졌던 것은 정치적 지역주의였다. 특히 영호남이 극심한 분열 대립상을 보였다. 정치 명망가들 혹은 실력자들은 ‘민주’ ‘공화’ ‘통일’ ‘평화’ ‘국민’ 등 민주적 가치나 원리를 따서 당명을 지었으나 기실은 영남당 호남당을 만들고 이끌었다. 리더들은 지역 맹주 노릇을 했고, 공공연히 ‘주군-가신’의 공고한 집단성을 과시했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충성이 의리로 포장됐다. 그 같은 지역할거의 붕당정치가 정치의 민주적 성숙을 저해한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도무지 깨뜨려질 것 같지 않던 지역대립의 정치, 지역당 구조가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완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몇몇 저명인사들이 연고정당의 후보 대신 그 경쟁 후보의 진영에 참여한 데 이어 전직 의원들이 대거 과거의 경쟁정당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일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고 보좌했던 인사들 몇몇이 같은 길을 택했다.

예전 같으면 ‘철새’라는 비난이 거셌을 듯한데 이번에는 그런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이 또한 큰 변화라고 할 만하다. ‘주군-가신’ 시대의 의리는 특정 개인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제 그런 인식도 바뀌는 분위기다.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 소신 가치관 등을 분명히 하고, 이를 일관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의리’라고 생각하게 된 듯하다.

“DJ가 퇴임 기자회견에서 ‘악마의 주술 같은 영호남 지역갈등을 해소하고자 평생을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며 눈물을 흘렸는데 우리가 DJ 정신으로 열심히 할 것입니다.” 새누리당에 입당한 김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못마땅해 할 일이지만,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성숙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 흐름이 쌍방향적으로 이뤄진다면, 그래서 양측에 영호남 인사들이 고루 섞이게 된다면 ‘DJ의 비원(悲願)’도 머지않아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부산의 경우는 ‘접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정당 및 후보에 대한 지역적 편향성이 많이 완화된 모양이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현상이겠으나 유권자 의식의 성숙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하겠다. 새누리당이 그곳에서 잃는 표를 호남지역에서 만회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선거문화 성숙의 한 단면이 될 것이다.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인의 천하이다. 천하의 이익을 만민과 함께하는 자는 천하를 얻을 것이요, 천하의 이익을 제 마음대로 하는 자는 천하를 잃을 것이다.”

주 문왕이 어떻게 해야 천하 만민이 따르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은 데 대한 강태공의 대답이었다(육도삼략).

후보 각자는 지역의 맹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결의를 새로이 하고, 주권자인 국민 또한 지역의 스타가 아닌 국민의 제1공복을 잘 가려서 뽑겠다는 다짐을 확고히 해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