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한승주 전 외무부장관] “한국 새 대통령 美와 관계 강화하되 中 자극은 말아야” 기사의 사진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이 보는 ‘오바마 2기’와 외교전략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대표적 외교학자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총장을 지냈다. 1993년 외무부 장관으로서 한·미 간 공조체제를 통해 1차 북핵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엔 주미대사로 발탁돼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했던 노 대통령과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요즘도 민간 외교관으로서 국익을 위해 애쓰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재선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만난 사람=김진홍 논설위원

-오바마의 재선 성공이 갖는 미국 정치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유색인종 후보가 백인이 70%인 미국에서 재선됐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인종과 소수계층에 관대해졌다는 점을 의미하며, 흑인과 라티노 및 기타 유색인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많은 백인들이 오바마에게 표를 주었기 때문에 그의 당선이 가능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미국의 양대 정당, 즉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계층의 차이가 더욱 극명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소수집단, 젊은층, 진보계층, 지식인, 서민들, 도시민, 근로자의 지지를 많이 받은 반면 공화당은 백인, 장·노년층, 보수계층, 부유층, 도시외곽민, 농어촌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더 심화됐습니다.”

-올해 미 대선의 특징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이번 선거는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선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양당이 선거에 60억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이는 2010년 대법원이 거액의 선거헌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두 후보가 격렬하고 집중적인 정책 경쟁을 벌인 점입니다. 경제와 의료보호제도, 부유층에 대한 증세,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그리고 외교 문제에 이르기까지 두 후보가 첨예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오바마의 승인은 무엇이라고 봐야 합니까.

“오바마가 승리했다기보다 밋 롬니가 패배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평가일 것입니다. 롬니는 선거운동 중반까지 너무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고, 당선되면 4년간 1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든지 하는 비현실적인 약속을 남발했습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47%의 국민 무시 발언’도 치명적이었습니다. 오바마 대안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데 실패한 것이지요. 여기에다 선거 일주일 전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를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해 롬니는 선거운동의 발목이 잡힌 반면 오바마는 위기에 적극 대처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줄 기회를 얻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바마 2기의 한·미 관계를 전망해 주십시오.

“오바마의 ‘중심축을 아시아로(Pivot to Asia)’ 정책과 동맹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한국과의 동맹을 계속 중시할 것이며,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협력과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입니다. 관건은 오는 12월 19일 탄생할 한국의 새 대통령이 어떤 대미정책을 취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4년 전 선거운동 중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했으나 나중에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 의회 비준을 받아내기까지 했습니다. 한국과의 경제관계도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오바마가 경제회복, 적자예산 축소, 일자리 창출의 압력을 받고 있어 동맹관계에 있어서는 방위비 분담 문제, 교역에 있어서는 덤핑, 관세 문제에 있어서는 압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질까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후임으로 존 케리 상원의원과 수전 라이스 주유엔 대사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오바마가 중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번에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소 넉넉한 과반을 차지했으므로 케리가 임명될 소지가 큰 듯합니다. 이 경우 정치적 비중이 큰 그는 강력하게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추진할 것이며, 6자회담을 비롯한 대북정책에 더욱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전 라이스의 경우도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북·미 관계는 북한의 태도와 소행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오바마는 2008년 당선된 후 북한에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 대남 도발 등으로 응답했습니다. 그 후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경색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바마의 미국과 시진핑의 중국 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할 듯한데요.

“선거운동 기간 롬니 후보가 중국에 강경한 정책을 표방함으로써 오바마도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당선이 되든지 중국에 대해선 견제와 협력의 정책을 동시에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중 관계는 미국보다는 중국에서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많이 좌우될 것입니다. 미국의 대선 결과 때문에 미·중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당선 초기에 중국에 강경책을 취하다가 결국은 협력에 비중을 두는 쪽으로 선회한 것처럼 오바마 2기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미·중 간에 글로벌 패권경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은데요.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글로벌 즉 세계적인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시아에서만 미국에 버금가는 패권국가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따라서 군사·안보적 측면에서는 경쟁적인 모습을 보일 테지만, 경제·교역·투자 측면에서는 상호 의존도가 심해 협력적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오는 12월 선출될 우리나라 새 대통령이 대미 관계에서 신경 써야 할 점을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것이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는 데 협력하는 과정으로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외교·안보 면에서는 미국과 동맹국으로서 협조·공조하며, 경제면에서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에 너무 몰입돼 중국의 의구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우리나라 대선 운동이 한창입니다. 미국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대선도 이렇게 변했으면 하는 점들이 있으면 비교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나라와 미국의 제도가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미국은 주별 선거인단의 승자 독식, 선거인단 과반 확보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후보들은 선거인단 수가 많은 경합주에 선거 운동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거 이슈도 그런 지역들에 맞춰 선별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흠집내기에 집중하지 않고 정책경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또 과격한 해결책보다는 중도적이고, 점진적이고, 건설적인 해결책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양당제도가 확립돼 있어 합당이나, 후보 단일화와 같은 정치공학적 머누버(maneuver·책략, 공작)에 관심과 정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일들이 필요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최고 지도자들이 바뀌고 있는데요.

“미국만 경우가 다르죠.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으니까요. 우리와 잘 지내던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예측 가능성과 지속성이 생겼습니다. 또 롬니와 달리 오바마는 학습과정(learning process)이 비교적 짧을 겁니다. 오바마는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해 호의적입니다. 그러나 그는 크고 어려운 과제들을 안고 당선됐습니다. 예산 적자는 16조 달러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15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 행정부와 의회, 의회의 상원과 하원을 다른 당이 컨트롤하는 분할된 정부(divided government)를 이끌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국내 경제를 재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 중동의 민주화 문제, 이란의 핵개발 등의 과제들이 놓여 있습니다. 미국 국민이 오바마에게 새로운 임무를 준 것이라기보다는 1기에 이루지 못한 약속을 이행할 시간을 더 준 것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한·미 관계와 동맹을 유지·강화하는 틀과 기회가 생겼고, 미국과 생산적인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확대할 수 있는 4년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은

△경기고·서울대 외교학과 △미 캘리포니아 버클리주립대 정치학박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초빙교수 △고려대 총장 △유엔 사이프러스담당 특별대표 △아·태안보협력이사회 공동의장 △서울국제포럼 의장 △동아시아비전그룹 공동의장 △외무부 장관 △주미대사 △코리아글로벌포럼 의장 △2022 월드컵 유치위원회 위원장 △유엔교육문화과학기구(UNESCO) 석좌교수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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