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0) 가장 길었던 한 주 기사의 사진

가장 길었던 한 주(닉 페이지, 오주영 옮김, 포이에마)

“나는 민족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재자이다. 각 사람의 운명과 죽음은 내 권력에 달려 있다. 운명이 각 인생에게 어떤 선물을 내려줄지 내 입술이 선포한다. 내 발언으로부터 백성들과 나라들은 기뻐할 이유를 찾을 것이다. 내 호의와 은총이 없다면 온 세상의 어느 한 구석도 번성할 수 없다. 내 평화가 억누르는 수천의 검들이 내 고갯짓 한 번으로 뽑힐 것이다.”

누구의 선언인가. 흡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것과도 같은 이 선언은 로마 황제 네로의 입술에서 나온 선포였다. 일사불란한 군대 조직과 정보망, 거기에 저항할 수 없는 잔혹함으로 정복한 나라들을 다스려 나가는 황제의 통치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대 사회에서 로마는 흔히 ‘문명의 등불’이라고 지칭됐는데 그것은 로마 제국이 도로와 다리를 건설하고 웅장한 건축과 화려한 예술, 그리고 법과 문학을 꽃피워 다른 민족과 차별화되는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런 차별성은 우월성으로 인식되어 정복의 논리를 제공하게 된다.

로마의 통치 하에 들어간 나라는 완전히 풍속과 문화가 로마화된 경우와 로마에 흡수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로 나뉘어졌는데 유대의 경우 후자에 속했다. 전자의 경우는 칼과 군대로 비교적 잘 다스려졌지만 후자의 경우는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쓰는 교묘한 통치술이 필요했고 로마 정부가 그 통치술의 하나로 활용한 것이 고유 종교인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다. 부(富)를 쥐고 로마 권력의 비호를 받은 이 종교지도자 집단이야말로 유대의 실질적인 권력층이었기 때문에 부임되어온 총독들도 그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 두 권력 사이에 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의 한 주에 대한 다큐적인 기록이다. 사실 예수에게는 돈과 권력을 함께 쥐고 있던 안나스와 가야바가 로마의 총독보다 더 힘겹고 버거운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나온다는 한 ‘애가’는 유대사회에서 유대교 지도자와 가문이 저질러온 악행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베두스의 가문으로 말미암아 내게 화 있으리라. 그들의 막대기로 말미암아 내게 화 있으리라. 하닌(하난, 즉 안나스)의 가문으로 말미암아 내게 화 있으리라…그들의 주먹으로 말미암아 내게 화 있으리라. 대제사장과 그들의 아들은 성전 회계원이며 그들의 사위는 보관인이며 그들의 종은 막대기로 사람들을 때린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인해 일단 로마 권력층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승리한 듯 보인다. 책의 서두에 나와 있는, 누가 쓴 것인지 모를 짤막한 보고서에도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그를 환호하는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로마의 권위에 대항하고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키다가 재판을 받고 십자가형에 처해졌는데 이런 일은 제국의 변방에서는 늘 있는 일 중의 하나”라고 기록됐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버림받고 쓸쓸히 죽어간 그 죽음이야말로 위대한, 참으로 로마가 꿈도 꾸지 못했던 너무도 위대한 승리의 서곡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은 그 실패한 듯 보이지만 위대한 승리의 문을 연 한 주일간의 치밀한 기록이다. 2000년 전 그때 그곳에서 가장 길었던 한 주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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