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철가방 우수씨 기사의 사진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그는 세상이 싫었다. 초등학교는 공납금이 없어 그만둬야 했다. 사회에 나가서는 나이트클럽에 손님을 끄는 피에로로 전전했다. 클럽 사장이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자 살 의욕마저 잃었다.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르려고 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가게 됐다.

어느 날 교도소에서 ‘사과나무’라는 잡지를 보게 됐다. 형편이 어려운 세 남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소년은 초등학생인 두 여동생을 돌보는 소년가장. 어릴 적 허리를 다친 막내 동생은 ‘꼽추’라고 놀림을 받는다. 동생의 등을 가려 줄 책가방 하나를 사주고 싶어도 돈이 없다. 이 사연을 접하고 그는 전 재산 30만원 중 10만원을 소년에게 보낸다.

그리고 며칠 후, 천애고아로 아무도 찾지 않던 그에게 처음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소년이 보낸 것이다. 이 편지에 그는 눈물을 펑펑 흘린다. “나한테 감사하대요. 나한테도 감사하다는 사람이 있어요.”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감사하다는 얘기를 들은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철가방 기부천사 고(故) 김우수씨 이야기다. 감사하다는 말, 누군가에게는 흔하디흔한 말이겠지만 그에게는 인생을 변화시킬 한마디가 됐다.

그는 출소 후 서울 일원동에 있는 중국집 ‘동보성’에서 배달부로 일했다. 월급은 고작 70만원. 그래도 자신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 생일이나 졸업식 때는 선물도 해주는 ‘키다리 아저씨’였다.

창문도 없는 1.5평짜리 고시원에 살면서도 늘 웃었다.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이른 아침 극장을 찾아 조조영화를 보는 게 취미였다. 그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방에는 모아둔 영화 티켓이 한 박스나 됐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도 다녔다.

남들이 보기엔 별 볼일 없는 중국집 배달부였을지 몰라도 그는 행복했다. 자신을 부모처럼 의지하는 다섯 아이들이 있었고, 북적거리는 고시원 이웃의 따뜻함이 있었다. 중국집 사장 내외와 동료도 있었다. 어찌 보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듯한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누구보다 끈끈했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매일 통독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기부 액수로만 보면 땅에 떨어진 한 톨의 밀알이었을 그의 삶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유가 있어야 돕는다는 것은 핑계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기부문화도 확산됐다. 기적의 정점은 영화 ‘철가방 우수씨’(감독 윤학렬·22일 개봉)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특수효과나 뛰어난 볼거리, 자극적인 소재도 없는 착한 영화, 상업성이 없어 아예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에 주연배우 최수종을 비롯한 많은 예술인이 재능기부를 했다. 수익이 안 나는 영화는 ‘퐁당퐁당’ 교차 상영해 비난을 받았던 CJ엔터테인먼트도 배급에 나섰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1억 관객’ 시대가 열렸다. 올해 1000만 관객이 넘는 영화가 두 편이 나왔다. 어떤 영화에 100만은 우스운 숫자이지만, 어떤 영화에 100만은 꿈이다.

‘철가방 우수씨’는 완성도가 높은 영화는 아니다. 고인의 삶을 극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각박한 사회,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치유를 받게 될 것은 분명하다. ‘철가방 우수씨’의 흥행 기적을 응원한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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