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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고승욱]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관심 갖자

[여의춘추-고승욱]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관심 갖자 기사의 사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소중한 기구… 원칙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던 게 엊그제인데 벌써 추워서 몸을 웅크린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사진도 신문에 났다. 올해는 선거가 있고, 경기도 나빠 분위기가 얼마나 살아날지 모르겠지만 연말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릴적에는 매년 이맘때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냈다. 선생님이 얼마씩이라고 정해주면 반장이 걷었다. 안 내면 야단을 맞았다. 좋은 취지였지만 강요에 따른 거부감이 있었다. “내가 불우이웃인데 누굴 돕나”라는 말도 꼭 나왔다. 관치 모금의 전형이었다.

정부가 나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정착되지 않았고 ‘잘 살아 보세’가 최고의 선이던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이 끼니를 걸렀지만 정부는 돈이 없었다. 성금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80년에는 사회복지사업기금법이 제정돼 당시 보건사회부가 모금을 도맡았다. 90년대 초 이웃돕기중앙운동추진협의회라는 단체가 정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공무원이 주도하는 방식은 여전했다. ‘강제모금’에 대한 비판은 갈수록 높아졌고 잊을 만하면 터지는 성금 유용사건에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관치 모금 논란은 9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출범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핵심은 공동모금제다. 이는 민간단체가 전문적인 캠페인을 벌여 재원을 마련하고, 필요한 곳을 선정해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단체가 미국의 유나이티드웨이(UWA)다. 1887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교회들이 결성한 자선조직협회가 모체인 UWA의 연간모금액은 3조8000억원이다. 1900개가 넘는 지역조직과 전국 사회사업단체, 학교, 교회의 네트워크를 통해 도울 곳을 찾는다. 정부, 기업과도 긴밀히 협조한다. 하지만 누구의 입김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귀중한 성금을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는 철저함이 조직 곳곳에 배어있는 단체다.

우리나라 공동모금회도 그렇게 출발했다. 94년 시작된 사회적 합의과정에서는 정부의 입김을 어떻게 배제하느냐가 주요하게 논의됐다. 강요된 성금에 대한 나쁜 기억을 없애지 않고는 기부문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3년 뒤 제정된 공동모금회법은 중앙·지방조직을 모두 독립법인으로 만들었다. 정부 역할은 인허가와 감독으로 한정했다. 임원에는 종교계, 언론계, 노동계, 시민단체 등을 대표하는 사람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조문까지 담았다. 출범 당시의 철저함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모금액은 3395억원이다. 설립 첫해 213억원의 16배다. 이 돈은 사회복지기관과 단체 2만5000곳을 통해 400만 소외계층의 삶을 부축했다. 마지못해 성금을 냈던 과거에서 벗어나 모두 기부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모금회 하면 2010년 사건을 연상한다. 당시 복지부는 공동모금회가 7억5453만원을 부당 집행했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직원들이 나이트클럽 등에서 498만4000원을 썼다는 내용도 있었다. 배신감을 느낀 국민들의 질타가 한동안 이어졌다. 물론 감사보고서를 꼼꼼히 읽은 뒤 공동모금회에서 헌신했던 직원들로서는 억울한 점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잘못한 직원이 있었고, 10년이 넘으면서 조직이 느슨해졌다는 점도 분명히 드러났다.

지금 공동모금회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잠복해 있다. 비리사건을 계기로 외부의 입김이 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다른 모금회를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부 초기 구상이 힘을 얻었고, 임원 임명을 놓고 낙하산 논란까지 일었다. 올 초 관련 시민단체들은 “공동모금회가 관치 모금을 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공동모금회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소중한 기구다. 만들어진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되는 원칙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해법은 모두의 관심이다. 기부의 기쁨뿐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즐거움도 느껴야 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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