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1) 하동편지 기사의 사진

하동편지 (조문환 글·사진, 북성재)

오늘은 모처럼 쉬어가는 페이지의 책읽기를 하려 한다. 계속해서 영적인 책을 읽는 것은 마치 고단백 음식을 연거푸 먹는 것과 같아서 때로는 보다 담백하고 맑은 먹거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원한 석간수(石間水) 한잔을 길어 마시는 것과 같은 청량함을 주는 책으로 ‘하동편지’를 집어 든다.

책의 원제목은 ‘시골공무원 조문환의 하동편지’다. 경남 하동의 햇빛과 바람과 색깔을 글과 그림에 담아 펴낸 책이다. 읽다 보면 그곳 사계절의 속살을 헤집고 있는 느낌이 들 만큼 생생하다. 하동은 한국의 코츠월드로 불리는 곳. 코츠월드는 영국의 전원도시로, 영국뿐 아니라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렇다고 무슨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다. 야트막한 돌담길과 그 돌담길 따라 이어지는 숲이며 물길들이 정겨운 곳일 뿐이다. 옛 모습 그대로의 마을과 개울, 그리고 들과 숲이 펼쳐져 있을 뿐인데도 이제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찾고 싶어하는 곳이 되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쩌면 코츠월드를 찾아오는 사람마다 연어처럼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안고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동 역시 우리가 오래전 떠나왔거나 잃어버린 우리네 고향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용케도 산업화와 개발의 광풍을 견뎌내며 그 옛날의 순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강건하면서도 기품 있는 지리산과 그 억센 지리산 자락을 부드럽게 감아 돌며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강둑을 따라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과 쏴아 솔바람 소리를 내는 송림들이며 햇빛 속에 익어가며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는 유실수들. 저자는 그 하동땅을 한번도 떠나지 않고 그 풍광과 바람과 햇살을 담아 인터넷으로 실어내다가 마침내 서간 형태의 책으로 묶어내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시골공무원이며 아마추어 문필가라고 하고 있지만 이미 데뷔한 사진작가인 데다 시인이기도 해서 글과 사진이 여간 맛깔스럽지가 않다. 그가 날라다 주는 하동편지를 읽는 중에 나는 그만 수줍게 돌아앉은 새색시 같은 그곳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저자는 때로는 수묵 톤으로 때로는 채색화와 같이 자신의 고향 모습을 부지런히 렌즈에 담고 원고지에 실어 보내줌으로써 메마른 도시의 아스팔트를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촉촉한 감성을 일깨우며 그 옷소매를 잡아끌고 있다.

잘난 도시 사람들이여, 잠시 멈추어서 내가 전해주는 내 고향의 바람냄새를 맡아보오, 멀리서나마 백설 애애한 들판과 불타는 저녁놀의 모습을 바라보고, 새들이 우짖고 꽃이 피는 사연들에도 귀 기울여보오. 강물은 왜 저희들끼리만 속삭이며 흐르는지, 낙엽은 왜 그토록 무심한 영혼처럼 자유롭게 내리는지, 한번쯤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내 고향 소식에 눈길 주고 귀 기울여 주오. 저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 숨 가쁜 속도로 산업사회와 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고향을, 자연을 그리고 그 속에서 나고 자란 우리의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산천은 어디랄 것도 없이 상업적 시설물이며 볼썽사나운 간판들로 뒤덮이다시피 하여 그 청정한 기운마저 잃어가고 있는데도 선거철이면 지자체마다 다시 산을 깎고 들판을 뒤집어 토목공사에 열심이다. 주변 경관과의 조화 따위는 아랑곳없이 자고나면 새 건축물이 들어서 있어 고향을 찾아가도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이런 시류 속에서 하동 지킴이 조문환은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라고 책으로 항변하고 있다. 눈물겹도록 지켜낸 고향땅의 아름다움을 내보이며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고향 상실 증후군을 앓고 있다. 고향이 북쪽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리워 찾아가보건만 그곳은 이미 마음속의 고향은 아니어서 쓸쓸히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고향으로 가는 창구 하나를 열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 속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잃어버렸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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