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안철수의 單騎千里 기사의 사진

“아마추어가 프로 정당의 단일화 프레임에 들어간 순간 승리 헌납은 예고됐다”

한국 정치가 지난 1년여간 경험했던 ‘안철수현상’은 머지않아 어쩌면 일반명사로 사전에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헌정사 64년, 해방으로부터 셈하자면 67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오늘에 이른 정치권과 정치인들을 한 순간에 압도해 버린 태풍이었다.

안 전 후보는 정치개혁과 정권교체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 가운데 ‘정권교체’는 민주통합당과 공유할 수 있는 목표였다. 그렇지만 ‘정치개혁’은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까지도 대척점에 세운 모토이고 가치였다. 그의 기준에서는 민주통합당 역시 구태정치의 한 축이었다.

대중적 인기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협상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다자 구도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정도의 양상이라도 계속됐다면 단일화 협상을 피하려 했을 터이다. 그런데 1위 박근혜, 2위 안철수, 3위 문재인 구도가 고착화(후에는 2위도 불확실해졌지만)되면서 그는 2, 3위 간 ‘몰아주기’의 유혹에 지고 말았다.

거대 정당과의 단일화 프레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정치 아마추어에게는 ‘승리의 헌납’이 되기 십상이다. ‘새로운 정치’의 구현을 위한 정책, 가치 등을 말할 때까지 그는 선계(仙界)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당공천 후보와 단일화 카운터파트가 되면서 그는 속계(俗界)에 발을 디뎌야 했다. 기성 정치 구조와 질서 속의 일원이 된 것이다.

현실에서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안 전 후보가 아마추어라고 하는 것은 명분과 목표를 뒤섞어 버린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통령 되기가 목표였다면 진작 민주통합당에 입당하는 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정치개혁이 더 우선적인 가치였다면 후보 단일화 같은 것에 마음 뺏길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질 것을 두려워했다. 이미 지고 들어간 것이다.

아마추어는 프로의 치밀함과 노회함을 따르지 못한다. 대의명분이란, 전쟁에서는 긴요할 수 있지만 전투에서는 오히려 장애요인이 될 뿐이다. 문재인 후보도 프로 정치인은 아니지만 그의 뒤에는 풍부한 경험으로 전투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노련한 정치꾼들과 정당 조직이 있다.

자신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안 전 후보는 민주통합당 측이 기대했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문 후보를 견인해 집권당 후보의 당당한 적수로 올려 세운 공이 그중 첫째다. 문 후보는 안 전 후보의 인기에 편승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의 포기를 이끌어내면서 ‘단일 후보’의 지위를 확보했다.

안 전 후보가 극적인 패배를 통해 문 후보의 위상을 더 높여주지 않은 것이 서운할 수도 있지만 과분하다 할 정도의 조력을 그로부터 받았다. 아마추어 선수를 링 위에 끌어올려서 그렇게 활용했으면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 제대로 펀치 교환도 안 한 채 링을 내려가는 것까지 타박할 수야 있겠는가.

안 전 후보의 1년여에 걸친 정치편력은 관우의 단기천리(單騎千里) 5관6참(五關六斬)을 연상시킨다. 관우가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길, 단기필마로 천리를 종횡하면서 다섯 관문을 지나는 동안 자신을 막고 나서는 여섯 장수의 목을 쳤다는 나관중 ‘삼국지연의’의 이야기다. 프로로 자처하는 정치인들, 그렇게 주눅 든 모습을 드러내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면 한국정치는 구제불능이다.

다시 안 전 후보―. 그는 대중의 환호에 너무 도취된 탓에 대통령 선거를 팀 경기가 아닌 슈퍼스타K로 오인했다. 개개인은 진지하고 사려가 깊지만 대중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은 면이 있다. 쉽게 호기심을 갖고 쉽게 싫증을 낸다. 열광도 잘 하지만 잊어버리기도 잘 한다. 대중의 비위를 지속적으로 맞추어 가기는 어렵다. 태풍은 머무르지 않는다.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정치를 계속할 마음이 있다면 우선 슈퍼스타의 기억 속에서 살 것인지, 민주적 가치의 전도사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직업정치인이 될 것인지부터 분명히 하는 게 좋겠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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