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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안철수가 거듭나려면

[김진홍 칼럼] 안철수가 거듭나려면 기사의 사진

“정계 입문부터 대선후보 사퇴까지의 잘못들 자성하고, 낯선 환경 극복해야”

‘나 하나 꽃 피어/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결국 온통 꽃밭이/되는 것 아니겠느냐/나 하나 물들어/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말하지 말아라/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결국 온 산이 활활/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다. 안철수씨는 대선후보를 사퇴하기 사흘 전인 지난 20일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 말미에 이 시를 인용했다. 당시 안씨는 “국민을 믿는다. 함께 꽃 피울 것”이라며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홀연히 떠났다.

‘대선후보 안철수’는 사라졌지만 ‘안철수 현상’은 아직 유효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방황하는 안철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 새 정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박 후보 측이 문 후보와 안씨와의 간극을 넓히려 공세를 펴고, 문 후보가 안씨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부동층으로 돌아간 이들의 마음을 잡는 게 여야의 선거 전략이 된 것이다.

그는 조만간 문 후보 지원에 나설 것이다. 단일화 과정에서 문 후보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넘어 분노했지만,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약속을 실천에 옮길 것이란 얘기다. 그가 정치권에 돌아오더라도 ‘정치인 안철수’의 재기로 보기는 이르다. 그가 다시 서기 위해선 정계 입문에서부터 대선후보직을 사퇴할 때까지의 상황을 세밀하게 반추하며 잘못을 되돌아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지지자들의 조직화를 등한시한 점은 실책 중 하나다. 지난 9월 1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직후의 지지율은 폭발적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꽃 피어 풀밭이 꽃밭 되는 건 시간문제로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주춤하더니 이내 내리막길을 걸었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지지자들이 세를 확장하는 데에는 뒷짐을 진 채 환호만 외친 점이 주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문 후보는 민주당 조직을 풀가동해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안 전 후보는 지지자들을 지역별, 연령별, 직업별로 묶어 이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도록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다. 소액이지만 선거자금도 내도록 해 연대감을 강화했어야 했다. 정당을 만들었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당을 만들면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들어 그가 그토록 중시하는 새 정치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는 게 딜레마다.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본인의 문제도 크다. 국민 열망을 등에 업었지만 새 정치 프로그램은 물론 경제, 외교·안보 등 주요 국정에 대한 철학이 빈곤했다. 민주당조차 “정치 불신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신비주의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실망감이 확산됐다. 여기에는 단일화 과정에서 유리한 룰을 고집하는 등 권력지향적인 기성 정치인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점도 작용했다. 국민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지도자로서의 준비가 미흡했던 것이다.

또 다른 잘못은 기성 정치권을 얕본 점이다. 기성 정치권을 겨냥한 훈계와 비판에는 능했으나 정당정치가 얼마나 깊게 뿌리내려 있는지는 간과했다. 여론의 지지를 받고, ‘진심’이라는 무기만 있으면 정치권이 두 손 들 거라는 식으로 나아간 것도 나이브했다. 무소속 대통령이 되면 국회의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구체적인 설명 없이 정당소속 대통령보다 무소속 대통령이 낫다고 주장한 것 역시 정치현실을 경시한 발언이었다.

그의 앞에 전개될 낯선 환경도 난제다. 대선후보에서 다른 후보 선거를 돕는 입장으로 변한 터라 그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추종세력도 많이 약해졌을 것이다.

이래저래 거듭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민주당 불쏘시개 역할로 정치인 생활을 마감하지 않고 꽃을 활짝 피우고 싶다면 뼈저리게 자성하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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