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퇴임 앞둔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  차윤정 환경부본부장 “江의 미래 열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 기사의 사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사실상 완료됐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주변을 정비하는 일만 남았으니 대장정을 끝낸 것이나 다름없다. 대운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4대강 정비로 마무리 짓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4대강으로 선회한 뒤에도 공방은 끊이지 않아 전국 곳곳에서 갈등의 현장으로 떠올랐다. 광화문에 촛불이 켜진 뒤에는 인부들이 숨죽여 공사를 했다.

사업의 선봉에는 토목에 일가견이 있는 대통령이 섰다. 여기에 땅과 물을 다뤄본 국토해양부 관리들이 돌격대를 구성했다. 이들은 조용히 강을 긁었으나 반격도 만만찮았다. 금수강산을 난도질한다는 환경론자들의 목소리가 큰 울림을 낳았다. 강은 한번 훼손하면 되돌리기 힘들다거나, 대형 보(洑)로 인해 머지않아 대재앙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에 국민들이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여기서 잔다르크처럼 나타난 이가 차윤정(46)씨다. 4대강 논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2010년 5월에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에 영입돼 전장을 휘저었다. 직책은 전문계약직 1급 공무원인 환경부본부장. 본부장의 지휘를 받지만 환경 파트를 맡았으니 여당 내의 야당이라는 불편한 자리였다. 여기에다 홍보업무까지 안았으니 악역을 도맡은 셈이었다.

그가 갑옷을 입고 내지른 일성은 “강은 손을 봐야 한다”였다. 전국의 성당에 “강은 흘러야 한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을 무렵에 정반대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국민 설득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강이 사람에 의해 관리되지 않으면 사람을 덮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금빛 물결 반짝이는 강도 있지만 홍수가 나면 성난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물살도 있다는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언을 경청했다. 기자도 큰물이 날 때 범밭골과 청석골에서 쏟아지는 물길을 놓고 양쪽 마을 사람들이 소리치며 응원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범밭골 물길이 세면 우리 동네 축대가 위험해지기에 우비를 입은 채 초조하게 물의 행방을 지켜보았다. 황톳물의 행진이 끝난 뒤에는 천변의 축대가 얼마나 듬직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차윤정도 이런 경험이 있다. 부산 구포여중에 다닐 때 홍수가 지면 강이 넘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김해 쪽 학생들을 조기 귀가시켰다. 강은 더러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물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차씨의 활약은 여론의 물길을 바꾸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40대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그가 나서자 많은 전문가들이 무조건 반대에서 정부 논리에 귀를 기울이는 쪽으로 돌아섰다. 생태학자의 변신이 강력한 보증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주민들의 의견이 대립되는 곳이라면 작은 동네의 마을회관까지 찾아가 설명했다. 여기에는 10여권의 책을 쓰면서 갖춰진 논리적 설득의 힘이 뒷받침됐다.

욕도 많이 먹었다. ‘생태학자의 변절’은 점잖은 표현이고, 한 교수는 “관직에 영혼을 판 파우스트”라고 비유했다. 그가 나온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동문 중 일부는 “호적을 파서 떠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언론에 오보가 나오면 반박자료를 냈고, 수많은 토론을 마다않고 참여했으며, 고공에서 농성하는 반대자들을 향해 소리치기도 했다. 국토부 내에서도 그는 소수파였다.

그래도 그는 굳건히 소임을 다했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추진본부 해체와 더불어 자리를 떠난다. 논란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세월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후회는 없나?

“한때 역사의 강물에 표류하는 나뭇잎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좌절한 적은 없다. 나를 두고 와글와글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부분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정말 나를 잘 아는 분들은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격려해 주셨다. 숲을 전공했지만 1990년대 후반 생태하천조성사업에 참여해 하천을 많이 다닌 바 있어 즐기면서 일했다.”

-추진본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물고기들이 좀 불쌍했을 것이다. 보를 막으면서 어도(魚道)를 설계에 반영하긴 했는데 너무 인공적이고 규격화돼 있었다. 어도 건설 현장의 소장에게 어도를 만들어 본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30년 토목인 인생에 처음이라 했다. 이미 설계가 끝나기는 했지만 어도 전문가와 현장을 함께하면서 개선점을 일러주었다. 물고기가 다니는 길을 경사지게 만들고, 길이도 늘였으며, 나무그늘을 만들고 물살의 흐름까지 조정했다. 이포보에 가보면 어도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새들이 길목을 지킬 정도다. 눈물겹지 않은가?”

-물고기 말고는?

“사람들에게 강의 미래를 열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4대강 어디를 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버려진 공간을 다듬어 새로운 강변 놀이터로 만들었다. 서울의 한강변 주민들만 즐길 수 있었던 친수환경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도 학자로서 큰 긍지다.”

-반대여론이 거세 힘들었을 것 같다.

“신념과 논리로 대응했다. 4대강 현장 가운데 마지막 갈등이 있었던 두물머리 유기농지만 한번 보자. 사람들은 유기농이라는 단어 자체에 환상을 가지고 있다. 유기농은 선(善)이고 생명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유기농의 목적이 사람의 몸에 좋은 것을 먹자는 것이 아니라 땅의 힘을 돋워 생산이 지속되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유기농으로 인근 하천생태계가 영향을 받는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정의다. 계분(鷄糞)을 비롯해 그 많은 거름이 강으로 스며들면 먹는 물이 오염된다. 그래도 유기농인가?”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녹색주의를 경계했다. 대표적인 것이 습지에 대한 인식이다. 습지의 기능과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낙동강 해평습지는 그들의 말대로라면 철새들이 기착하는 모래로서 중요하다. 이는 대체 기착지를 조성하거나 겨울철 수위조절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진짜 습지 생태계를 위한다면, 숱한 습지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그동안 단절되거나 위태로웠던 물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시켜줘야 한다. 모래도 그렇다. 사람들은 강변의 모래톱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해오라기를 평화로운 모습으로 기억하지만 강의 주인은 물고기이고, 물고기는 모래보다 물이 중요하다. 허연 모래로 이루어진 백사장보다 물이 가득 찬 강을 보는 것이 훨씬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인식은 그동안 진행돼온 급격한 산업화나 도시화에 대한 반작용 일수도 있다.

“환경은 더 이상 운동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녹색에 대한 생각도 바뀔 필요가 있다.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 개발과 보전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어떻게 우리 환경과 산업구조를 리모델링해서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불필요한 개발을 억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자원이용을 효율화하고, 자연재해를 줄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환경과 사람을 모두 살리는 일이다.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인데도 저항과 반발만 일삼는 것은 ‘녹색의 역설’이다.”

-운동가들의 조언이 4대강 사업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긍정적 역할이 별로 없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찌들어 있었다. 명분에서 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제 근거 없는 적대감은 거두어들이고 행복한 환경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도 유연해지고 느긋해져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4대강을 허문다든지, 청문회를 열겠다는 주장도 있다.

“강을 찾아 내용을 제대로 알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치수의 중요성을 아는 국가지도자라면. 정 궁금하면 영산강이나 금강 주변의 주민들에게 물어보라, 얼마나 고맙다고 하는지. 청문회? 백번 열려도 자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당당히 나의 주장을 펼 것이다.”

그러면서 물에 대한 위정자들의 고민은 유사 이래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신라 시대부터 왕이 낙동강의 범람으로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기록으로부터 알 수 있다. 당시 막대한 재정과 인력이 소요되었던 제방의 축조를 대신하기 위해 지방의 행정관들은 고육지책으로 제방 숲을 쌓았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의 임수(林藪)’에는 우리 조상들이 홍수를 막기 위해 많은 수변보안림(水邊保安林)을 조성했다. 1938년 당시 낙동강의 95개 임수 가운에 46개가 남아 있었다.

-그동안 지식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데 1200명의 자문교수가 있다. 그러나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힘이 되어 주셨다. 부산대 신현석 교수는 올해 태풍 삼바가 들이닥칠 때 잠을 설치며 낙동강 수위를 체크해 주셨다. 정쟁(政爭)으로 변한 4대강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을 뿐이지 도와준 분들이 많다.”

-4대강의 미래를 정말 확신하나?

“우리가 사는 환경은 토목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미 강은 온전히 자연만의 강도 아니지만, 인간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호락한 자연도 아니다. 적절하게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게 인간과 강을 위한 길이다. 우리는 쌓인 흙을 파내고, 보를 막아 물그릇을 키웠으며, 강 주변을 정비해 놀이터를 만들었다. 그게 끝이다. 나머지는 자연의 몫이다. 물이 알아서 새로운 길을 낼 것이고 나무는 씨앗을 뿌려 서식지를 넓혀 갈 것이다. 나는 그런 변화를 지긋이 지켜 볼 뿐이다.”

-정부와 함께 일하면서 답답함을 느꼈을 법도 한데.

“그분들은 국토를 관리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짧은 시간에 대규모 국책사업을 하는 동안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이 컸다. 다만 사회와 소통이 되지 않는 안타까움은 있다. 앞으로는 하드웨어를 까는 것 이상으로 왜 그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국민 서비스다. 토목과 더불어 생태와 경관도 대등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앞으로 계획은?

“그냥 좀 쉬고 싶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 사회를 좀 더 건강한 녹색사회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어느 시인이 ‘강이 아파하는 소리에 고통스럽다’고 했는데, 이런 식의 감성이 지배하는 공동체여서는 안 된다. 정부라는 시스템 내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 환경은 과학이고 이성이며 엄격한 논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차윤정 부본부장

1966년 부산 출생. 혜화여고,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산림환경학 박사. 산림청 정책심의위원, 생명의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 운영위원, 경원대 산업환경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신갈나무 투쟁기’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나무의 죽음’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 등의 저서가 있다.

만난 사람=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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