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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김의구] 박근혜의 수첩, 문재인의 의자

[여의춘추-김의구] 박근혜의 수첩, 문재인의 의자 기사의 사진

“공당 선거캠프는 국가 미래 빼앗고 정치 희화화하는 네거티브 치명적 유혹 떨쳐야”

대통령 선거전이 갈수록 진풍경이다. 초반에는 정책선거, 미래를 향한 선거를 하겠다며 후보마다 다짐을 하더니 이내 과거 공격, 흠집 내기가 고개를 들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정리되면서 접전 양상의 양대 선거 구도가 된 이후에는 선거가 온통 네거티브 일색이다.

지난 27일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후보들이 나서서 네거티브 선거전을 주도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라고 비난하고, 문 후보는 박 후보를 “유신독재 세력 잔재의 대표자”라고 부르고 있다. 어느 선거나 정권 심판론은 주요 이슈다. 상대 후보의 정당이 집권했던 시기에 저질렀던 실책을 비판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를 위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집권으로 치면 50년,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은 역사 인물을 끌어다 놓고 비판의 소재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박 후보가 유신과 부친의 과오에 냉정하게 대응했더라면 귀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공허한 전략이 됐을 것이다. 참여정부 실정론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긴 하지만 실책만 갖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사안은 아니다. 후보가 공과가 있음을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은 넘어서겠다는데 몰아세우기만 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정치의 범주에 속한다. 28일 논란을 빚은 문 후보의 호화 가구 문제는 실소를 자아낸다. TV 대선광고에 등장한 문 후보 집 의자가 외국 유명 가구 디자이너의 제품이어서 그가 강조하는 서민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가구에 이어 안경과 점퍼, 양말이 명품이라는 폭로까지 나왔다.

서민 이미지를 선거 콘셉트로 내세웠다고 가재도구가 예외 없이 서민용이어야 하는가? 명품 의자를 쓴다고 정책이 서민을 외면하란 법은 없다. 문 후보 측이 “박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금고에서 수억원을 받았다”고 맞대응한 것도 치졸하다. 문 후보 부인이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소파를 아는 분이 땡처리로 싸게 샀고, 나중에 그걸 제가 50만원에 샀다”는 등의 해명을 총총히 트위터에 올린 것으로 충분하다.

민주당이 박 후보에게 공주 이미지를 덧씌우고, 귀족이라고 몰아가는 것도 정책과 출신의 관계를 지나치게 결정론적으로 본 네거티브다. 박 후보를 ‘수첩 공주’라 비꼰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다. 번지르르한 말로 때우는 정치인이 허다한데 알뜰히 메모를 하는 것은 미덕이지 폄하할 거리가 아니다. 수첩을 보고 또박또박 정리된 말만 하는 것이 소통의 제약이 될 수 있겠지만 그만큼 국민을 어렵게 생각하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다. 대통령에 당선돼 수첩을 들고 다니는 비서를 따로 두고 현장의 소리를 챙긴다면 본받을 일이다.

존 매케인, 젭 부시 등에 조언을 했던 미국 공화당 전략가 마이크 머피는 “사람들은 종종 네거티브 광고에 신물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네거티브 정보는 그들이 결정을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찾기 어렵다”고 했다. 정책이나 비전을 아무리 강조해도 무미건조하게 들리고, 제대로 겨냥한 약점 공격 한 방에는 쉽게 나가떨어지는 게 선거의 속성이다.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막바지로 갈수록 네거티브 유혹은 치명적이 된다. SNS 영향력이 커지면서 네거티브가 발을 붙이기 더 좋은 토양이 됐다.

비전 대결은 제쳐놓고 상대 약점만 들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행태다. 네거티브가 난무하면 후보들은 필요 이상의 상처를 입고, 공존이 어려운 적으로 남게 된다. 국민은 미래를 잃고, 정치는 끝없이 희화화된다.

국가와 국민, 정치를 위해 네거티브는 자제돼야 한다. 상대를 공격할 때는 진위를 먼저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할 명분과 논리가 충분한지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 도덕성·자격 검증과 동떨어진 인신공격은 안 된다. 공당의 선거캠프가 SNS처럼 가벼울 수 없는 일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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