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빨강의 이력 기사의 사진

상징색이 빨강인 새누리당 당사가 있는 서여의도는 붉은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다. 빨간색 야구점퍼, 빨간색 재킷…. 당사 앞에는 빨간 목도리와 빨간 장갑을 파는 행상 차량도 나타났다. 미처 빨간색 옷을 구하지 못한 당원들이 주요 고객이다. 4월 총선 때보다 한결 더 붉어졌다. 봄옷보다는 겨울옷의 질감이 붉은색의 강도를 더하기 때문일까?

민주당도 상징색이 있다. 지지자들은 노란색 점퍼에 노란색 목도리, 장갑을 끼고 유세장을 노란 물결로 뒤덮고 있다. 노란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황토색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더욱 선명하게 바꾼 색이다. ‘친노’의 반감을 의식해선지 당직자들은 연두색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색을 함께 쓰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보라색을 상징색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빨강이 눈에 띄는 것은 그 색이 가진 이력 때문일 것이다.

빨강은 그동안 우리에게는 금기의 색이었다. 우리에게 빨강은 분단의 비극을 겪게 한 공산주의의 빨강이었다.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초대 정부는 빨강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1950년 1월 ‘국호(國號) 및 일부 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을 담은 국무원 고시 제7호에서 ‘정치구분 지도에서 우리나라의 색은 녹색으로 하고, 붉은색은 사용하지 못 한다’고 못 박았을 정도다.

6·25를 겪은 세대들에겐 빨강이 공포 그 자체였다. 또 오랜 세월 사상적 연좌제에 묶여 괴로움을 당했던 이들에게도 빨강은 벗어 버리고 싶었던 ‘족쇄’였다. 뿐인가. 70·80세대들에게도 빨강은 불온(不穩)의 징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색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빨강이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것은 2002년 월드컵이었다.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셔츠를 입고 한마음이 되어 우리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빨강에 대한 공포는 시나브로 사그라졌다.

물론 월드컵의 응원 열기를 이끈 것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6·25도 겪지 않았고, 월북한 아버지나 이모부도 두고 있지 않았으며, 정부를 비판했다고 간첩으로 몰리는 청년시절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들의 열정과 월드컵 4강의 기쁨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오래도록 똬리를 틀고 있던 ‘레드 콤플렉스’를 스르르 풀어 버렸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의 빨강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빨강은 진보 진영의 색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면서 상징색을 빨강으로 정했던 지난 2월 당시에도 빨강은 진보신당의 상징색이었다. 당내에서도 반발이 있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 보수를 상징하는 파랑을 버리고 빨강을 선택했던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올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서 다시 한번 붉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박 후보는 빨간색 옷이 잘 어울려 외모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빨간 야구점퍼를 입은 50, 60대 남성 당직자들은 한결 젊어 보인다. 검정과 진한 감색이나 회색 일변도인 남성 정장에 빨간 목도리는 포인트가 돼 멋스럽다. 이번 선거가 빨간색의 매력을 발견하는 기회도 됐으면 싶다.

5년 동안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마당에 패션이나 논하다니 한가하다고 퉁을 준다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 컬러를 즐길 만한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선거에서 ‘색깔 논쟁’이 이념 대립이 아닌 상징색 대결이 된 마당에.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