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3) 4차원의 영성 기사의 사진

4차원의 영성 (조용기 지음, 교회성장연구소)

조용기 목사가 남인도에서 연인원 100만명이 참가한 성회를 가졌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조 목사님 연세가 올해 얼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93세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자전적 책을 읽고 있던 터였다. 거의 동시에 지구촌의 두 영적 거장에 관한 소식을 접한 셈이었다. 조용한 감동의 물결이 일렁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청장년 시절 두 분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사해에 출렁일 정도였다. 조 목사의 집회가 있다 하면 내가 자란 남쪽의 작은 시는 숫제 그 전체가 들썩이는 느낌이었다. 종교를 불문하고 꾸역꾸역 사람들이 교회당으로 몰려들었는데 하룻밤 집회에 수많은 결신자가 생겨나곤 했다.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에 그분은 사람들이 꿈꾸지 못했던 영적 부요에 대해 선포하였다.

좌절과 낙심이 숙명처럼 내려오던 삶마다에 대고 등짝에 죽비를 치듯 “일어나라”고 외쳤고 질병에 속수무책이던 시절 “병을 가져오는 귀신아 떠나가라”고 벼락같이 외치곤 했다. 그분이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어 오늘날의 웬만한 아이돌 스타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물적 가난 퇴치를 부르짖었다면 조 목사는 영적 빈곤 퇴치를 외쳤던 선각자인 셈이었다.

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집회에는 100만명이 더 모였고, 이 즈음 한국 기독교의 교세 증가는 매년 10%가 넘을 정도였다. 참으로 미증유의 폭발이었고 그 한 축에 조 목사가 있었다. 신문의 조 목사 인도 집회 100만명 기사를 보면서 ‘불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나님의 특별한 종들에게는 확실히 위로부터 오는 불멸의 기운이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부흥사 조용기’의 전성기 때가 한국 교회로서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이제 한국 교회는 정체를 지나 쇠퇴로 기울고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 ‘희망의 등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차제에 다시 100만명의 해외 집회가 불붙었다고 하는 것은 감격이 아닐 수 없다. 기사를 접한 뒤 조 목사의 ‘4차원의 영성’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책은 예컨대 ‘조용기 신학’의 핵심이 될 만한 내용으로 차 있다. 성령운동의 불길을 지폈던 저자가 세계 최대 교회를 이끌며 영의 세계를 목회 현장에서 실증적으로 체험하고 펼친 내용으로 시종하고 있다. 생각과 믿음과 꿈과 말을 통해 보이지 않은 4차원의 세계를 현실의 지평 위에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역설하고 있다. 저 유명한 ‘바라봄의 법칙’이 등장하는 것도 이 책이다. 심오한 영적 세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쉽고 구체적이다.

신앙훈련의 참고서로서도 좋은 책인데 한국인이 쓴 기독교 서적으로서는 괄목할만하게 외국 여러 나라에서도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저자가 말하는 4차원의 세계란 한 마디로 영적 세계이고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사탄도 영물이기 때문에 영적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라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만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캄캄하고 황무했던 시절에 하늘로부터 오는 영혼의 생수를 마셔야 참 삶을 살 수 있다고 역설했던 저자는 정작 중요한 것은 만질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없는 그 4차원의 세계에 있다고 역설한다. 우물가의 여인이 예수님과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제로 서로 대화가 엇갈렸던 것도 그 영에 대한 무지 때문인 셈인데, 마찬가지로 교회를 오래 다녔다 해도 영계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진정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거듭 ‘생각하고, 믿고, 꿈꾸고, 말하는’ 방법을 통해 그 4차원의 영적인 세계를 움직여 현실의 지평 위에 실현시킬 수 있다고 역설하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여의도 허허벌판에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세운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황이 깊어지고 사는 것이 힘들다는 한숨소리들이 들려온다. 옛날 같은 절대 빈곤의 상태와는 또 다른 절망과 불안의 기운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IT 강국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영적인 어두움과 타락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꽃 같은 나이에 낙엽처럼 떨어져 죽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신문을 펼치기 무서울 만큼 날마다 끔찍한 사건 사고들로 얼룩져 있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다른 무엇보다 시급히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 같다. “일어나라!”고 외치는 제2, 제3의 부흥사 조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여의도 사무실로 저자를 뵈러 간 적이 있다.

“교수님 글을 잘 읽고 있어요.”

그 옛날 내가 ‘부흥의 밤’에 멀리서 뵈었던 그 칼칼한 모습도, 카랑카랑한 모습도 아니었다. 내 앞에는 온화하고 온후한 보통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다정다감하고 온후하던 보통 노인이 다시 강단에 섰을 때 100만명이 운집했던 것이다. 백발을 휘날리며 저 산지를 내게 달라고 했던 갈렙처럼, 조용기 목사의 영적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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