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裸木 기사의 사진

“강추위 속에서도 유세장에 모여 귀 기울이는 청중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갑자기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닥쳤다. 잎을 다 떨궈버린 가로수들이 나목의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 줄기와 가지들은, 구부리면 휘어지는 대신 톡 부러질 것같이 메마른 몰골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안다.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시작됨을. 겨울의 황량한 논밭이 봄을 잉태하듯이. 나목이 된 연후에야 새 움을 틔우듯이.

강추위 속에 대선 주자들의 득표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토요일 오후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서울 광화문의 같은 장소에서 두세 시간의 시차를 두고 유세전을 벌였다. 뺨이 얼얼한데도 광화문으로 가겠다는 지인의 말에 “국민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자책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대통령이 되기 위한 일이라지만 그 사람들이라고 춥지 않을 리 없다. 그래도 자기들 일이니 고생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 하겠지만 청중은 다르다. 여간 정성이 아니고서는 그 추위에 시달려가며 유세장을 찾을 엄두를 낼 수 있을 리 없다. 천하흥망필부유책(天下興亡匹夫有責)! 주권자로서의 책임을 가벼이 하지 않는 청중들에게서 우리 모두의 희망을 본다.

“참으로 모진 대선이다.” 새누리당의 조윤선 대변인이 3일 새벽 여의도 성모병원에 차려진 이춘상 보좌관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며 혼잣말로 그랬다고 한다. 숨이 턱에 차올라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고, 그 와중에 동료가 목숨까지 잃었다. 누구에겐들 그런 생각이 안 들겠는가.

그런데 선거전이 모질기는 그들만의 경우가 아니다. 한 유능한 인사가 국민적 환호 속에 등장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주었다. 그는 오래 고심하다가 대중의 환호에 응해 길을 나섰다. 그건 한국 정치 ‘제3의 길’이었다. 그런데 채 몇 걸음 떼어놓기도 전에 그는 기성 정치세력과의 표몰아주기 게임에 끌려들었고, 아마추어답게 좌절해야 했다.

아마도 ‘정권교체’라는 명분에 휘둘린 탓이겠지만 그걸 직접적인 목표로 삼았을 때 이미 그는 새 정치의 요체를 놓치고 있었다. ‘새로운 정치’만을 추구했어야 했다. 새 정치가 새 정권을 낳을 수는 있겠지만 새 정치와 정권교체가 동의어는 아니다. 정권을 잡아야만 새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 또한 권력숭배일 수 있다.

마침내 그는 기성 정치세력들의 집권경쟁 구도 속으로 끌려들었다. 그 스스로가 구정치세력으로 규정했던 양대 진영의 한쪽에 편입되어 선봉장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새 정치’는 잊힌 명제가 됐다. 그에게는 ‘정권교체’만 목표로 남은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새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스스로 믿고 싶겠지만 정치란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그는 “영혼을 팔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팔아야 할 영혼이 남아 있지 않았을지 모른다. 시달리던 끝에 내던져 버렸거나, 아니면 이미 영리한 계산의 달인이 되었거나…. 어느 쪽이든 그에게도 선거는 모질고 정치는 잔인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큰 바위 얼굴’ 기다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부자 개더골드(Gathergold), 장군 올드블러드앤선더(Old Blood-and-thunder), 정치가 올드스토니피즈(Old Stony Phiz)…. 그들에게 환호하다 실망하곤 하면서도 국민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는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주인공 어니스트가 나타날 때까지. 그래서 추위를 무릅쓰고 유세장에 모이는 게 아니겠는가.

당연히 지금의 경쟁자들 가운데도 ‘바로 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 된다. 그 대통령이 진정한 사랑과 지혜를 갖추고, 국민과 함께 희망을 향해 걸을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우리의 어니스트일 터이다.

후보 여러분, 시간이 좀 지난 후 큰 바위 얼굴을 바로 곁에 두고 먼 데서 찾았음을 우리가 같이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추위가 매섭습니다. 건강 각별히 챙기십시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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