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정택] TV토론 제대로 되려면 기사의 사진

“잃을 게, 읽을 게, 낄 데가 없었다.” 지난 4일 대선 후보자 TV 토론회가 끝난 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덮은 평가다.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정치참여가 활성화되고 소통이 증대되면서 36%를 상회하는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보였지만 TV토론을 본 후 지지 후보를 변경한 유권자 수는 미미하다. 정당이 형해화하고, 정책이 소멸된 가운데 TV토론이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유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준은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대선 TV토론은 1997년 제15대 선거 때 도입됐다. 당시 공영방송사 주관 TV 대담·토론회 규정이 신설되고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TV합동토론회를 실시하면서 매스미디어 선거시대가 열렸다. 이는 조직 중심의 금권선거 문제를 방지하고, 개별적인 선거운동을 진행하는 후보자들 간의 정책과 자질을 종합적이고 비교적인 관점에서 유권자들이 평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TV토론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 유권자들의 인지도, 관심도, 신뢰도, 공정성 등이 확보돼야 한다. 후보자의 정책과 자질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데 유용하다고 인식돼야 하며 무미건조하지 않고 흥미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 TV토론은 앞서 지적한 요인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공정성에 대한 고집으로 후보자들의 지지도와 관계없이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고, 토론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일관했다. 정책적·이념적 차별성이나 후보자 개인의 자질을 보여주기에도 실패했다. 후보자들 사이에 대화를 통한 합의 도출과 다름의 인정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히려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만 조장했다.

국민은 과연 어떤 판단 기준으로 누구를 찍어야 할 것인가? 지지율이 1%가량인 후보자의 거침없는 토론에 통쾌함을 넘어 카타르시스까지 느끼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거대 정당의 주요 후보들은 TV토론에서 무엇을 보여줬단 말인가. 정치란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기반으로 하는데 후보자들이 TV토론에서 새로운 비전과 정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유권자에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 성별인가, 독재자의 후손인가, 전임 대통령들에 대한 회고적 평가로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망국적 지역감정에 또 한번 호소할 것인가? 정책과 공약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투표 결정 이유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와 유권자들의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현실이다.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가 정당(party)이 중심이 되어 하나의 파티(party)가 되는 것은 평범한 유권자들의 희망이다. TV토론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TV토론에 참석 가능한 후보자의 요건을 강화한다든지 자유로운 토론 방식을 도모한다든지 유권자들의 참여를 강화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된다. 유권자의 동조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단일화 논의를 비롯해 정책이 실종된 선거과정에서 선거일 즈음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 부동층 유권자는 TV토론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제도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비겁한 변명이 아닌 남은 TV토론에서는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것들이 개별 후보자들의 노력으로 고쳐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아야 할 시점이다. 국민의 선택에 따라 얻을 것도 잃을 것도 많은 선거과정이다. 하지만 누구를 어떻게 선택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국민들이 읽을 정책과 비전들은 대체 보이지 않는다. 네거티브 선거와 감성에 호소하는 여야 간 치열한 정치공학적 대결구도 속에서 국민의 여망과 열정은 낄 데가 없다. 결전은 시작됐고 결정은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

한정택 연세대 동서문제硏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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