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1부) 왜 독일인가 기사의 사진

시리즈를 시작하며

분단과 통일, 흔들리지 않는 경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사회 안전망이 확실한 복지 체계,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 보수와 진보 간 정책 보완, 무엇보다 각계 지도층에 배인 기독교적 소명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시기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독일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잘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갑자기 유럽 전체가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기독민주당 헤르만 그뤄헤 원내대표, 2011년 11월) 유로존과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뚝 선 독일의 위상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수출 실적, 경상수지 흑자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독일의 여러 정책과 시스템은 이미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국민일보가 내년 창간 25주년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연중기획 시리즈 ‘독일을 넘어 미래 한국으로, K-next paradigm’을 시작합니다. 시리즈는 1부 ‘왜 독일인가’ 2부 ‘5년, 새 정부의 과제’ 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순서로 이어집니다. 특별취재팀 30여명이 독일과 관련 국가들에서 심층취재를 할 예정입니다.

獨은 ‘한국의 문제들’ 슬기롭게 극복했다

독일은 한국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모델임에 틀림없다. 특히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 발전 모델에 회의가 증폭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독일 벤치마킹이 확산됐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정부 관료, 대학 교수, 기업인, 학생, 시민 등은 현재의 독일 시스템에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강한 경제

유로존 경제위기가 서유럽을 덮쳤을 때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독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는 EU 경제체제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증표다.

EU 27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독일의 비중은 20.2%를 차지한다. EU 내 최대 경제대국이 독일이다. 독일 연방 재무부와 연방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유로존 위기로 유럽이 휘청대고 있는 상황에서도 독일은 2010년 3.7%, 2011년 3.0%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인플레이션도 거의 없어 물가 또한 안정적이다.

금융업이나 서비스업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도 굳건한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독일의 제조업 비중은 26.1%로 영국(16.1%) 프랑스(14.1%)를 압도한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은 독일 경제의 엔진이다. 중소기업 규모인데도 삼성전자처럼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 130여개나 된다.

베를린에서 만난 듀스버그에센대 경제학과의 앙거 벨케 교수는 “한국 제조업도 기술력은 상당하지만 독일은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세계적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독일 기업들의 제품을 사는 소비자들은 불평하면서도 살 수밖에 없다. 시장에 다른 제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통일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다시 하나가 됐다. 독일 통일의 성적표는 현재까지 매우 우수하다.

한스 페터 프리드리히 독일 내무부 장관은 올 9월 26일 발표한 ‘독일 통일 현황 연례보고서에서 “동서독 지역의 공동 성장이 긍정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구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11.3%를 기록해 통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프리드리히 장관은 “동독 지역의 경제적 동화 과정은 세계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뒤 “통일 직후인 1991년 동독의 가계소득은 서독 지역의 56%에 머물렀으나 80% 수준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교육·의료와 같은 공공재 공급은 동서독 간 어떤 차이도 없다”면서 “어린이 보육 등 일부 분야는 오히려 동독 지역이 서독을 앞지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소명의식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 사상)이 자본주의 사상의 기초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성실한 근검절약과 성실한 노동을 통한 부의 획득은 신의 축복이며 자본주의 발생은 종교개혁의 산물이었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에 의해 등장한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의 논리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프로테스탄티즘과 관련이 있다. 독일인들이 직업의식이 강한 것도 이런 이유다.

◇촘촘한 사회 안전망

아파도, 직장을 잃어도, 노후에도 독일 국민들은 돈 걱정을 상대적으로 덜 한다. 40%가 넘는 높은 세율에도 독일 국민들이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복지제도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무상복지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독일의 사회 안전망은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독일에서는 ‘분배냐, 성장이냐’ 논쟁이 불필요하다. 경제가 성장하면 보험금 지급액을 높였다. 곳간을 먼저 채운 뒤 돈을 올려 준 것이다. 1957년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의 노령연금보험 개혁 조치가 대표적이다. 월급이 높아지면 연금 수령액도 많아지는 연동 시스템이 도입됐다. 또 1960년 초반 빈곤층을 위한 사회부조법이 개정되면서 사회 안전망은 더욱 탄탄해졌다.

◇실용적인 교육제도

독일에는 대학 등록금이 없고 입시지옥이 없고 대학 서열화가 없다.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35% 수준을 유지한다. 대학에 모두 갈 필요가 없는 사회다.

독일의 교육제도는 실용적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이 인문계·실업계·기능계로 분류돼 있고 이를 졸업하면 4년제 대학이나 3년제 응용대학, 직업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독일 기업들이 학력이 아니라 경력으로 연봉을 지급하는 것은 이런 교육제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나 3년제 응용대학을 졸업한 2년 차 직원이나 월급 차이가 없다. 고등학교만 마친 뒤 같은 기간의 경력을 쌓아도 마찬가지다.

◇노사 상생 문화

독일은 노동조합, 사용자연합, 전문직 이익집단 등 여러 조직이 전통적으로 강했다. 그러나 이익집단들은 전후 경제가 성장할 때까지 이익 배분을 기다리는 지혜를 보였다.

1976년 제정된 노사공동결정법은 종업원 2000명 이상의 대기업에 대해 설비투자 등 경영 전략이나 임원 인사에 결정권을 갖는 감사회 인원의 반을 노조 대표 등 노동자 측이 구성토록 규정했다.

이 법을 통해 사용자 측은 투명한 경영에 주력했고 노동자 측은 무리하지 않은 합당한 요구만 제시하는 관행이 뿌리 내렸다. 전적으로 노동자 편만 든 법은 아니다. 가·부가 동수일 때는 주주 측이 선임한 의장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사용자 측을 보호했다.

◇동북아 틀에서 벗어난 외교 지평의 확대

독일은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급속한 산업화를 이뤄낸 ‘라인강의 기적’이 있다면 우리에겐 ‘한강의 기적’이 있다. 분단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 외교는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틀에서 벗어나 EU 최대 강국 독일이라는 새로운 지렛대를 마련할 수 있다.

베를린·프랑크푸르트·드레스덴=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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