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호 칼럼] 불 밝힌 서울도서관을 지나며 기사의 사진

“박원순 시장이 오세훈 후광 누릴 줄이야… 해 가기 전에 둘이 만나 밥 한 끼 나누길”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연말 인사에서 ‘KT 전무 오세현’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낙하산 인사라거나, 고속승진에 토를 달자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서 오빠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모습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이 황망 간에 시장 자리를 떠난 뒤에도 흔적은 짙게 남아있다. 5년여 시장으로 일하는 동안 그의 ‘디자인 서울’ 깃발이 오만 곳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의 업적에는 공과가 있지만 나는 서울도서관에 큰 점수를 준다. 수도 서울의 요충지에 도서관을 꾸민다는 생각은 소박하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이곳에 가보면 시민들이 도서관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정말 눈부시다. 아이들부터 학생, 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열람실은 열기로 후끈하다. 5m 서가 밑 계단의 독서장면도 장관이다.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갈증이 그만큼 컸다는 증거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데가 대도시지만 막상 엉덩이 하나 붙이기 쉽지 않는 곳 또한 서울이다. 벤치는 춥고, 카페는 돈을 내야 한다. 도서관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데다 안락한 의자가 있고 읽을 책까지 갖추었으니 더없는 문화공간이자 복지시설이다. 평일 대낮에도 빈 자리가 없는 이유는 이처럼 간단하다. 앞으로 곳곳에 도서관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26일 서울도서관 개관 테이프를 끊은 이후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사람은 박원순 시장이다. 트위터에는 “가장 박원순다운 정책”이라는 글도 올라와 있다. 사업을 완성한 부분이 있지만 굳이 공로를 따지자면 오세훈 전 시장의 몫이 크다. 2009년 당시 서울시 업무공간으로 리모델링할 예정이었으나 시민도서관으로 바꾼 주인공이 오 전 시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관식장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이 시정(市政)의 연속성이다. 시민들은 오세훈 브랜드나 박원순 사업을 가리지 않고 좋은 정책에 후한 점수를 준다. 서울도서관은 운 좋게 책을 좋아하는 박 시장의 취향과 맞아 문을 열고 삽시간에 서울의 명소로 떠올랐지만 비극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 사업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한강에 떠있는 세빛둥둥섬이다. 반포대교를 지날 때마다 흉물처럼 방치돼 있는 꼴을 보는 게 불편하다.

이 섬은 오 전 시장이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한 사업이다. 3년간 1390억원을 들여 지난해 5월에 개장했으나 서울시와 운영업체의 갈등으로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개장 당시 오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빛둥둥섬은 서울시 예산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은 사업입니다. 민간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해 순수한 민간의 투자 자본으로만 지어진 공간이지요.” 한 시민의 제안을 랜드마크로 꾸몄다는 자랑도 늘어놓았다.

그러나 박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는 규정 위반이라며 운영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와 플로섬이 맺은 계약 내용 중 “30년간 무상운영한다”는 조항은 공유재산법 시행령을 위반한 것이어서 무효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궁금해한다. 오 시장이 그대로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을까, 라고. 규정을 가벼이 여기라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든 해법을 찾아 세모에 불을 밝혔을게 아닌가라는 이야기다.

지금 펼쳐지는 대선도 그렇지만 우리 선거운동은 너무 모질다. 오세훈은 그래도 재선시장이었고, 박원순은 오세훈의 대타격인 나경원 후보에 7%포인트 차로 이겼다. 이 정도면 배려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서울도서관 개관 때 입안자를 초대조차 않은 것은 야박한 인심이다. 선거라는 게 승자독식의 고약한 구조라고 해도 상대를 불구대천지 원수로 여겨서야 되겠는가. 해 가기 전에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서울도서관을 둘러본 뒤 밥 한 끼라도 하길 권한다.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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