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4) 나마스떼, 닥터 양 기사의 사진

나마스떼, 닥터 양 (양승봉 신경희 지음, 생명의 말씀사)

몇 년 전의 네팔 여행을 잊을 수가 없다. 에베레스트로 오르는 산길이며 작은 마을에서 만난 그 가난하고 맑은 영혼의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산길에서 만나면 어김없이 까만 눈으로 “나마스떼”하고 공손히 손을 모아 인사하던 소년과 소녀들의 모습 또한 눈에 밟힌다. 전깃불도 없는 어둡고 비좁은 산촌의 궁핍한 살림 속에서도 환하게 미소 짓던 얼굴들이었다.

네팔 여행은 본디 그곳의 대사를 지낸 류시아님의 권유로 이루어졌는데 그분은 처음 그곳 대사로 부임하고 난 뒤 불가촉 천민 집단의 삶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민 끝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 하나를 세우기로 했고 나는 그 학교의 증축식에 초대받았던 것이다. 행사장에서 머물고 있는 호텔로 돌아오니 양승봉, 신경희 선교사 부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였는데도 소년 소녀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승봉 선교사는 의과대학 시절부터 의료 선교의 비전에 사로잡혀 있다가 네팔의 카트만두로 와 그곳에서 20여년이나 활동하는 의사였고, 그 부인인 신경희 여사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뒤 부군을 따라 역시 네팔로 와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네팔은 1인당 GNP 600달러의 세계적 빈국 중 하나여서 의료 혜택이 말할 수 없이 열악한 형편이다 보니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인데도 장애인이 되기 십상이었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양 선교사 내외는 이 와중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여행객에 불과한 우리를 붙잡고 열악한 그곳의 의료 현실을 열심히 설명했다. 사연을 듣다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한국에서 잘나가던 병원 외과 과장이었던 그는 네팔에 와서 모든 것이 백팔십도 바뀌어 버렸지만 그 모든 역경과 고생을 오히려 기쁘고 달콤하게 받아들이기라도 하는 듯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양 박사 한 사람의 손을 통해 살아난 사람만도 족히 1만명은 되리라고 류 전 대사는 설명했다.

보아하니 외과의사지만 내과는 물론 신경과, 이비인후과 할 것 없이 ‘신의 손’이 되어 동분서주 환자를 돌봐왔던 것 같다. 심지어 우스개처럼 자신은 매일이다시피 환자들의 배를 열고 피를 보아야 밥맛이 나는 남자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밤낮으로 수술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어도 그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막강한 체력의 소유자 같지도 않았고 시골 소년처럼 수줍음도 있는 데다 언어 또한 유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오직 너무도 안타까운 그곳 의료 현실만을 힘주어 설명할 뿐이었다. 부인인 신 선교사 역시 꽃다운 젊음을 오지에서 보냈음에도 시종 화사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 엄청난 일들을 해내게 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었고 기도였다. 똑같이 믿는 하나님인데도 나의 하나님과 그들의 하나님은 왜 이다지도 다른 것인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다. 하나님이야 한 분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섬기는 데 그이들과 나는 달랐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 부모 아래에도 효성 지극한 자녀가 있고, 부모의 속이나 썩이며 한숨짓게 하는 자식이 있듯 말이다. 그 내외가 돌아가고 나서 잠자리를 뒤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 살아 왔다는 자책과 회의의 감정이 밀려왔다. 밭에 감춰진 보화를 위해 삶을 올인한 그 용기와 신념과 헌신이 눈부시도록 부럽기만 했다. 해가 지나 서울에 다니러 온 그 내외를 다시 만나서 건네받은 한 권의 책이 ‘나마스떼 닥터 양’이었다. 20여년 네팔의 삶과 신앙이 담긴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때로는 혼자 웃고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간간이 책을 덮고 내가 다녀온 그 가난한, 그러나 아름다운 설산의 나라를 떠올려보곤 했다.

지금 양 선교사의 최대 바람은 네팔에 한시바삐 의료보험을 정착시키는 일이다. 보험 제도가 없기 때문에 병에 걸려도 차마 병원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은 수술 하나에도 그야말로 기둥뿌리를 뽑아야 하는 정도이니 현지인들은 그저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고통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네팔의 그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잡고 우리가 일어섰듯 우리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부부의 생각인 것이다.

처음 이 부부를 만났을 때만 해도 미력이나마 네팔의 의료보험 정착을 위해 나도 힘을 보태겠노라고 약속을 쾅쾅 해놓고 돌아와서 그만 까맣게 잊고 지내버렸다. 새해에는 부디 네팔에도 의료보험의 싹이 트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지키지 못한 나의 약속도 뒤늦게나마 다시 챙길 것을 다짐해 본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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