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끝까지 ‘쿨’ 기사의 사진

“아직 지지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매우 신중한 사람. 누가 흙탕치는지 보고 있다”

유권자의 마음을 끄는 것은 무엇일까. 소화하지 못한 지식으로 얘기하는 것, 인파몰이식 유세, 자신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 그런 것에 마음을 줄 요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경직된 국가관이나 상대비방, 획일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도 좋아할 사람은 아주 적다. 폭넓은 지식을 추구하면서도 아는 만큼만 얘기하는 솔직함, 편안한 분위기, 우리 편 아닌 사람과도 대화하는 자세. 유권자들은 그런 후보를 좋아한다. 유권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감탄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예전 사람들은 대통령을 천자(天子)라고 생각했다. 대통령과 유권자를 군신(君臣) 관계처럼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최근 몇 명의 대통령을 겪으면서, 그들이 여론의 어느 지점까지 내려오는지를 경험하면서 유권자들은 이제 대통령을 제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까지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군주적 대통령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인 시대가 되었다.

이번 대선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즐거운 시합이라고 할 만하다. 지금은 2파전이 되었지만 안철수 후보까지 3파전으로 전개될 때 세 사람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낡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후보는 여당의 풍부한 인물 프리미엄 속에서 또박또박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점이 있었다. 문재인 후보는 어설퍼 보이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안철수 후보는 산들바람을 몰고 다니면서 기존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순진함과 지략의 독특한 힘이 있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말은 과거 우리사회에 존재하지 않던 용어였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구호로 내다 쓸 만큼 파워 있는 용어가 아니었다. ‘정치쇄신’이란 말은 모든 유권자들이 고대하는 용어였지만 안철수만큼 멋지게 사용하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이런 특징을 갖고 세 사람이 리허설 무대 위에 섰다. 이는 오늘날의 대통령 선거가 절대적 지역 군주였던 3김(金)처럼 30년 이상의 주연급 배우가 올라오는 무대가 아니라는 것, 시대의 요구에 따라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조연급 배우가 올라와 스스로 주연으로 성장하는 무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능력 있는 조연들은 누구를 흉내 내지 않고 신선하게 간다. 그래서 조연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의외로 재미있다. 군중을 동원하지 않는 명랑함도 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가 예선 무대에서 빠지고 2파전의 본선 무대가 펼쳐지면서 그런 재미가 시들하다. 마지막 접전의 시간이 조여 오니까 배우들이 그동안 축적한 힘으로 연기를 펼치지 못하고 주변의 인절미들과 덩달아 흙마당에서 뒹굴고 있다. 분명한 팩트조차도 왜곡하거나 아전인수하면서 우겨댄다. 후보가 고물 묻히는 것이 목적인 인절미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통속이 되면 선거는 어렵게 되기 마련이다.

조급한 인절미들은 뭘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마구 뒹굴거나 흙탕물 급류로 내달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선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우리사회에서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대단히 신중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신중한 사람들이 탁류의 강에서 헤엄치고 놀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누가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지를 보고 있다. 내색하지 않지만 알 건 알고 있다.

폼 나게 나이 들기는 어렵다고 한다. 긴 레이스를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갱신하고 버전업해주기를 유권자들은 바란다. 그래서 자신을 열어야 하고, 아닌 것과는 결별할 줄 알아야 한다. 끝까지 유쾌하고 빈공간이 있는 조연 배우, 그래서 어느 순간에 주연으로 올라서는 배우. 그런 배우가 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고 말로만 해서는 곤란하다. 행동으로 다르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끝까지 쿨(cool)하게.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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