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기사의 사진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의 하늘은 12월에도 빛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머리 위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대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 앞으로 아이들의 행렬이 보였다. 책가방 하나씩을 둘러멘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대성당 근처 박물관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아이들은 화분 하나씩을 들고 웃으며 걸어 나왔다. 체험학습에 다녀오는 것 같았다.

최근 스페인에 다녀왔다. 하늘은 푸르렀고 하얀 집과 주황색 벽돌 지붕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끈 것은 아이들이었다. 행복해 보였다.

수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떨어진 톨레도는 스페인의 옛 수도. 중세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다.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꼬마기차를 타고 둘러본 톨레도의 전경은 이 도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런데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지역 출신 화가 엘 글레코의 집을 찾아가다 만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동네 놀이터에서 밝게 뛰어놀고 있었다. 왠지 학원에는 가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고, 학교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어 보였다. 집 앞을 나오면 스케치북에 담고 싶은 나무와 하늘이 있고 연필로 뭔가를 끼적이고 싶은 언덕이 있다.

그라나다는 또 어떤가. 중세 이슬람문화가 보존된 도시, 너무나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이다. 궁전 전망대에서 맞은 편을 보니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초등학교가 보였다. 체육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한 무리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이 학교 아이들은 매일 알함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운동장을 뛰겠구나 생각하니 한없이 부러웠다. 새삼 한국의 아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톨레도 좁은 골목길에서,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스페인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표정이 우리와는 달랐다. 다가올 시험에 걱정하고, 방과 후에는 학원 가느라 바쁜 한국 아이들과는 달랐다.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됐던 세비야의 담배공장은 현재 세비야 대학 법학부 건물로 쓰이고 있다. 세비야 대학에는 스페인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들로 북적였고, 젊음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대학가 노천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젊은이들의 모습에는 그늘이 없었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이들의 표정에서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스페인뿐이랴. 유럽 전역이 비슷하다. 집을 나서면 수준 높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로 체험학습을 간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나 보던 피카소, 달리, 미로의 그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세계적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도 바르셀로나 곳곳에 있다. 우리로서는 눈이 번쩍 뜨일 창의적인 건축물이 이 아이들에게는 어릴 적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건물이라니.

그런데 우리는? 인구 규모로 보자면 세계적 도시인 서울 한복판에는 내세울 만한 미술관이 없다.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미술관, 세종문화회관미술관이 있다지만 이 정도로는 성에 안 찬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완공되면 갈증이 해소될까.

투표 날이 밝았다. 투표용지를 들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어릴 적에는 많았던 영재들이 공교육에 편입되면서 조용히 사라져가는 한국, 각자의 장점을 부추겨주는 대신 상대적인 패배감에 빠지게 하는 교육. 이를 바꿔줄 후보에게 한 표를 던져야겠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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