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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고승욱] 투표율 75.8%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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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투표 참여율은 답답한 현상황을 바꿔달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뜻한다”

3072만1459명. 19일 치러진 대선에서의 투표자 수다. 전체 유권자 4050만7842명의 75.8%가 영하 10도를 육박하는 매서운 추위 속에 투표소를 찾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던 5년 전 선거에서의 투표율은 63.0%였다. 10년 전에는 70.8%였다. 그때는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영하 3∼4도 수준이었다. 그제 서울 시내 투표소 곳곳에는 오랜만에 투표를 기다리는 긴 줄이 등장했을 정도다.

당초 전문가들이 예상한 투표율은 70%에 못 미쳤다. 일부에서는 ‘투표율이 높아지면 보수 후보가 패한다’는 지금까지 경험을 앞세워 투표율 68%를 기준으로 당락이 갈릴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오후 4시가 조금 지나면서 17대 대선 최종 투표율을 뛰어넘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꾸준하게 유지됐던 투표율 하락세가 드디어 멈추고 처음으로 반등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으로 기록됐다.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따뜻한 방안에서 TV를 보는 대신 옷을 겹겹이 껴입고 투표소로 향하게 했을까.

전문가들은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후보가 양자대결 구도를 만들면서 지지층이 결집된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기권하고 놀러가기에는 유권자들의 긴장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강지원 후보를 비롯한 무소속 후보 4명의 득표율은 모두 합해도 0.4%에 불과했고, 광주와 대구의 투표율이 각각 80.4%, 79.7%로 광역자치단체 중 1, 2위를 기록한 것도 양자대결 구도 때문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50대 이상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점도 높은 투표율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투표에 참여하는 비율도 높아진다. 이번 선거에서 50대 유권자는 10년 전보다 550만명가량 늘어 777만명으로 집계됐다. 60대 이상 유권자가 841만명이니 50세 이상의 비율은 전체 유권자의 40%에 달하게 된 것이다. 아직 확실한 수치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50대의 투표율은 9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대선에서 50대 투표율은 높아봐야 80%에 불과했다.

그런데 투표율이 높아진 이유를 찾으면서 양자대결, 인구구성 같은 자료만 분석하고 끝내기에는 뭔가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문제를 풀면서 답을 문제에 대입하는 방식을 쓴 것 같다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너무 추워서 놀러가지 못했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다 보니 결국 투표하게 됐다고 설명하는 격이다. 언뜻 듣기엔 맞는 말이지만 답을 모르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객관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절박한 심정이 바로 강추위에도 투표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선 동력 아닌가 싶다. 먹고살기 힘들다. 조금 고생해 나아진다면 지금 힘든 게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을 찾기 어렵다.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물가는 자꾸 오른다. 아이들 학원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내 일 아니라는 생각에 접고 지내지만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북한, 멋대로 나가는 일본, 벌써부터 우리를 업신여기는 중국 때문에 화가 난다. 흉악 범죄와 대형 사고를 매일 접하면서 우리 가족은 안전한지 걱정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정치인들은 아예 얼굴 보기도 싫다. 이런 유권자들의 마음을 담아 야당은 ‘정권교체’를 주장했고, 여당은 ‘다시 한번, 잘살아 보세’라고 외쳤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진짜 생각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바꾸라는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선 투표소로 간 것 아닐까.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누가 될지, 당선인의 측근은 누구고, 새 정부 실세는 어떤 사람인지 말이 무성하다. 앞으로 5년 동안 국정을 맡을 사람들이니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더 중요한 게 있다. 바꿔 달라는 국민의 요구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누가 무엇을 하든 ‘허당’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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