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종말론 상인’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기사의 사진

“선거판에 끼어들어 분탕질하는 사람들, 지식이 독을 만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마야 달력으로 지구 역사의 최후라던 2012년 12월 21일이 지났는데도 지구는 멀쩡하고 인류는 팔팔하다. 마야문명의 터전이었던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에서는 그 후예들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반기는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다만 ‘종말 상인’들과 대중매체들만이 기를 쓰고 이 황당한 그러면서도 불길한 이야기에 집착할 뿐이다.

그런데 몇 천년 전의 사람들이 만든 달력이 21세기 첨단 과학기술 시대의 인류에게 공포를 안길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어쩌면 고대인에게는 대단한 예지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으려는 인자가 우리 뇌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혹 인간의 심리에 파괴본능 같은 게 들어앉아 있는 것일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현 상황에 절망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세상이 확 뒤집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세상, 자신이 주인공 되는 드라마가 시작되기를 열망하면서….

장삿속으로 ‘종말’을 파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을 것 같다. 마야 달력,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따위의 종말론이 이들의 주요 상품이 되었고, 아마도 짭짤한 재미를 안겼을 듯하다. 이런 음울한 예언들은 자주 대중매체, 특히 영상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된다. 그 과정에서 허황된 픽션은 논픽션으로 둔갑한다. 그 바람에 이들의 장사는 호황을 누린다.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미래는? 신자유주의 맹신자 대처(영국), 중도우파 메르켈(독일), 중도 좌파 바첼레트(칠레). 바첼레트는 기대무망. 메르켈의 반의 반만 해주길.” “대선 후 만난 벗이 ‘며칠 새 늙었네’라며 놀립니다. 그러면서 ‘5년 중 벌써 3일 지났잖아’라고 합니다.”

같은 사람의 트위터 글이라고 언론에 소개된 내용이다.

우리는 ‘내 편’의 대장을 뽑기 위한 선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를 했고,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런데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회적으로 이름 깨나 얻은 한 지식인이 이처럼 이죽거리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아무리 당선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그는 향후 5년의 국정을 책임질 사람이다. 그의 성공이 한국의 성공이 되고, 그의 실패가 한국의 실패가 된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의 성공을 축원해 주는 게 국민으로서의 예의고 도리일 터이다.

패장이 된 문재인 후보가 오히려 의연했다. 그는 19일 밤 패배를 확인한 직후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박근혜 당선인께서 국민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주실 것을 기대한다. 국민들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20일 박 당선인과의 통화에서도 문 후보는 “박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 제가 당을 책임지고 끌어갈 수는 없겠지만, 민주당이 정파와 정당을 넘어 국정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 속에 대의민주정치, 상생공영정치의 요체가 함축돼 있다. 선거는 정례적으로 실시된다. 후보들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다시 국가 발전을 위해 협력한다. 선거에서 패배한 측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다음 선거를 위해 역량을 키운다. 대의민주정치는 이 전제 위에서 성립되고 성숙되어 간다.

종말론자들은 지치지도 않는다. 어떤 종말론자는 다시 시기를 연장해 2015년에 종말이 온다고 떠드는 모양이다. 그런다고 지구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저주를 한다고 한국의 정치가 종언을 고하지는 않는다. 이죽거리고 저주하고 악담을 퍼붓고 해서 얻을 것은 더 짙은 패배감뿐이다. 이기는 길은 경쟁 상대를 욕하고 저주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포용력을 발휘하고 역량을 키우고 민심을 얻는 데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은 후에도 정치와 선거는 계속된다. 대선은 종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지식이 독이 되는 일이 없도록 지식인 각자가 노력할 일이다. 괜히 선거판에 덩달아 끼어들어 분탕질할 생각 말고!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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