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국] 크리스마스이브의 ‘전선야곡’ 기사의 사진

지금으로부터 98년 전, 유럽의 전쟁터에서 실제로 있었던 감동적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1914년 겨울 크리스마스이브. 북프랑스 전선의 어느 들판에서는 서쪽의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연합군과 동쪽의 독일군이 적을 불과 수백 m밖에 두고 참호 속에서 수 주일째 대치하고 있었다.

이때 독일군 진영에서 베를린 오페라의 전속 테너가수 출신의 한 병사가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척의 프랑스·스코틀랜드 연합군 참호 속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명가수의 캐럴에 감동받은 일부 군인들은 참호 밖으로 머리를 쳐들고 독일군 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총알이 비 오듯이 쏟아졌을 터이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용기를 얻은 병사들은 아예 참호 위에 걸터앉아 용감한 독일 명가수의 노래에 환호를 보냈고 열광적으로 앙코르를 요청했다.

이윽고 독일 프랑스·스코틀랜드 지휘관들은 중간지대에서 긴급 회합을 가졌고 크리스마스 휴전에 합의했다. 곧이어 양 진영 간에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이 이루어졌다. 이튿날인 크리스마스에도 양 진영은 축구대회를 열었다. 전사한 전우들의 시체를 매장하는 등 꿈 같은 성탄절 휴전을 보냈다. 며칠 후 비공식 휴전이 끝나고 양쪽의 병사들은 어제까지 어깨동무하며 지내던 친구들을 향해 총알과 포탄을 퍼부어야 하는 끔찍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초박빙 승부로 시종 숨을 죽이게 하던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양자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이념대결, 20∼30대와 50∼60대의 세대간 대결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생채기를 남겼다. 일부 젊은 누리꾼들은 투표결과가 조작되었다며 재검표를 요구하는 촛불집회 개최를 촉구하는가 하면,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상대 후보를 찍었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이름을 SNS 명단에서 지워버리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통령 당선자가 가장 시급하게 실천해야 할 일은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들과 대화합을 모색하는 일이여야 한다고 믿는다. 대화합을 위한 방안으로 경제민주화나 지역 균형발전, 복지 같은 거대 담론을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슈들은 사람들의 피부에 당장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북프랑스 전선에서 살벌하게 대치하던 독일, 프랑스,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진영논리나 국수주의,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순식간에 녹인 것은 의외로 한 오페라 가수의 감동적인 노래였다. 그가 부른 노래에는 유럽 젊은이들의 공통적 문화와 가치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공감대가 이루어지면서 적국임에도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대통령 당선자가 베를린 오페라 가수와 같은 명가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자신의 참호 밖으로 나와 상대방 참호를 향해 양쪽에 익숙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차갑게 외면하는 상대 진영 앞에서 부르는 ‘전선야곡’에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면 상대방도 마음의 총상을 치유 받고 무장을 해제하면서 손을 내밀며 한 잔의 따뜻한 차를 같이 마시자고 초대할지 모른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201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부전선 애기봉 등탑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조심스럽게 점등되었다고 한다. 이념으로, 지역으로, 세대로, 그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겨레의 대화합을 위해서 먼저 얼어붙은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2012년 성탄절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살벌하고 차가운 밤을 고요하고 거룩한 밤으로 만드는 그런 지도자를 기다려 본다.

김성국(이화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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