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구세군대한본영 박만희 사령관 “폐지 할머니·노점 아주머니… 어려운 서민들 나눔에 감동” 기사의 사진

찬 공기를 가르는 맑은 종소리와 타오르는 듯 붉은 색으로 섣달을 데우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올해도 세밑의 도시인들을 설레게 했다. 지난달 30일 시작해 25일 마감된 자선냄비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와 눈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우리 가슴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구세군대한본영의 박만희(65) 사령관을 만나 성탄전야에 마감된 거리모금 얘기를 들어봤다.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24일 찾아간 서울 충정로 구세군빌딩 6층 사령관실에는 훈기가 돌았다. 남쪽으로 난 창문에서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7평 남짓한 방에는 책상과 응접테이블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고, 서가에는 기독교 관련 서적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출입문 밖에 몽골 캄보디아 국기와 나란히 구세군 깃발인 혈화기(血火旗)가 세워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 사령관실이라기보다 여느 학교 교장실 같은 분위기다. “한국구세군이 몽골과 캄보디아까지 관장합니다. 북한도 관할구역인데 차마 인공기를 걸 수는 없었죠.” 박 사령관은 조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만난 사람=김의구 논설위원

-올해는 경기가 나쁜데다 혹한까지 잦았는데 모금목표를 채울 수 있겠는가.

“지난 20일까지 집계된 거리모금액이 37억원이고, 성탄전야 인파도 많아 무난히 달성할 것이다. 경기가 나쁘지만 자선냄비는 뜨겁게 끓고 있다. 비는 모금에 장애가 되지만 눈이 오면 오히려 모금액이 는다. 1973년 눈이 많이 내린 날 명동에서 브라스밴드를 30분간 연주했더니 100여명이나 줄을 섰다. 축복된 광경이었다. 모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담이 확산돼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모금목표액은 달성 가능하도록 잡는가.

“1928년 12월 명동에 첫 자선냄비를 걸어 넝마주이 등에게 식사를 대접한 이후 매년 조금씩 목표액을 늘려왔다. 35년 가까이 자선냄비 사업을 하면서 목표달성이 어려웠던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24일까지 안 되면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목표량을 채웠다.”

-모금이 가장 잘 됐던 때는.

“지난해에 이례적으로 빨리 목표를 달성했다. 45억원을 목표로 했는데 12월 4일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났고, 20일에는 90대 노부부의 2억원 기부가 있어 여러 언론에 소개되면서 모금이 활성화됐다.”

-올해도 익명의 거액 기부가 화제가 됐는데.

“지난 9일 ‘신월동 주민’이라는 분이 명동 자선냄비에 1억570만원 수표를 기부했다. 작년에 1억1000만원을 쾌척했던 얼굴 없는 천사와 수표 발행 지점, 편지 필체와 사연이 일치한다. 평생 이웃에게 정을 나눠주고는 호강 한 번 못하고 떠나신 부모님 유지를 받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일에는 국민은행 계좌로 1억원이 송금되기도 했다. 계좌이체 모금으로는 사상 최고액이었다.”

-기부자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을 텐데.

“익명을 원하는 당사자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90대 노부부는 강북에 살고 있는 분으로 사령관실로 직접 찾아왔기 때문에 신원을 알지만 공개하지는 않는다. 노부부는 2009년 처음 찾아와 1억원을 내놓고 갔고 지난해 다시 와 2억원을 내놓았다. 재작년은 노환 때문에 못 왔다고 했다. 해마다 한 분당 5000만원씩 기부하기로 한 것 같았다. 할머니께서 ‘영감이 며칠 안달이 나서 제대로 잠을 못 잤는데 오늘은 두 다리 쭉 펴고 주무시겠다’고 하시더라. 대단한 분들이다. 올해도 기다린다.”

-다른 기억에 남을 만한 사연들은.

“지난 15일에는 ‘중곡동 할미’라는 분이 3년간 매일 파지를 팔아 부은 적금과 이자 301만200원을 명동 자선냄비에 보내왔다. 친정아버지가 6년 전, 어머니는 4년 전 돌아가셨는데 남긴 수첩 갈피갈피에 챙겨둔 돈을 봤는데 차마 쓸 수 없어 기부한다는 경우도 있었다. 90년대 초 영등포로터리에서 자선냄비 봉사를 할 때 행상 아주머니가 멈칫멈칫 하다 다가와서는 머리에 짐을 인 채 한 손을 앞치마 돈주머니에 쑥 넣어 한 움큼 돈을 집더니 세어보지도 않고 건넸다. 아직도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려운 서민들의 나눔은 더 의미가 깊다.”

-올해는 디지털 자선냄비를 첫 도입했는데 호응은.

“23일 현재 3737만원이 모금됐다.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 신용카드 결제까지 1분가량 걸리고 한 번에 자동으로 2000원씩 기부되기 때문에 그 이상을 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80만원대까지는 한 번에 결제할 수 있지만 조작법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연중 운영되는 모금도 있는데.

“ARS나 온라인 모금 계좌는 상시 운영된다. 13개 금융기관에도 연중 모금통이 비치돼 있다. 상시모금은 올해 20억원이 목표다. ‘찾아가는 자선냄비’도 있는데 요청이 오면 어디든 달려간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교육 목적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교회가 초청하기도 한다. 감리교 강북본교회가 3년 전 시작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도 2년째 하고 있다.”

-자선냄비의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모금운동이다. 자선냄비는 선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자선냄비는 희망이자 행복이다. 나눌 때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사회는 희망을 갖게 된다.”

-가장 모금액이 많은 곳은 명동인가.

“강남 코엑스다. 유동인구와 부유층이 많고, 지하철 환승역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경제 중심이 강남으로 넘어가면서 생긴 꽤 오래된 현상이다. 명동에는 관광객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금 호응도가 떨어진다. 그래도 간혹 외화가 냄비에 들어있기도 하다.”

-구세군은 기독단체이면서 왜 군대처럼 운영되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다. 구세군은 전 세계 단일 조직으로 ‘하나의 구세군, 하나의 사명, 하나의 메시지’를 비전으로 하고 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에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란 구절이 있듯 성경에도 군대 개념이 여러 번 나온다.”

-개인 신앙보다 사회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가.

“구세군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의미다. 복지나 교육 사업 모두 궁극적으로는 영혼 구원이 목적이다. 윌리엄 부스가 구세군을 시작할 때 당초 목적은 개인 구원이었다. 그러나 그가 공원에서 빈민에게 전도를 해도 당시 교회가 이들을 수용하지 않았다. 예배 때 가족석을 정해두고 자리주인이 오지 않으면 자리를 비워두면서도 빈민은 받지 않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래서 부스는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을 주고 복음을 줘 행복하게 만드는 사회 구원으로 눈을 돌렸다. 구세군 교회는 마을의 공회당, 학교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에서는 구세군 학교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회 구원 분야는.

“ARC(성인재활지원사업)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 재활 프로그램인데 우리나라도 이미 약물중독이 심각하다. 미국에서는 약물중독자들을 적발하면 감옥에 갈 것인지 구세군재활센터를 갈 것인지 선택토록 하는 정도로 돼 있다.”

-구세군이 된 동기는.

“청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원래 모태신앙으로 장로교 통합 소속인 청주동산교회를 다녔다. 고교 때 친구의 권유로 청주구세군교회에 갔다가 그곳 사관 부부에게 붙들렸다(웃음). 1년 반 다니다 군에 다녀온 뒤 구세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사관학교 시험 합격해 놓고 중매로 만난 사람과 입교 17일 전에 결혼했다.”

-사령관은 어떻게 임명되나.

“런던 국제본부 회의에서 결정한다. 추천은 없고, 본부에 올라간 인사자료를 보고 신앙, 실천력, 비전 등을 감안해 결정한다. 사령관은 65세 은퇴 때까지 일하는 데 저는 1년 연장돼 내년 9월 퇴임 예정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도 하는데.

“북한도 우리 관할이지만 첫 접촉은 2000년대 초 스위스구세군을 통해 이뤄졌다.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가 염소젖으로 요구르트 만드는 공장을 요청했다. 세 번째 공장 건립에는 한국구세군도 동참했다. 요구르트병은 지금도 만들어 보내고 있다. 협동농장 인민들이 먹고 남은 요구르트는 평양 관광객에게도 판매한다. 구세군 마크가 찍혀 있는데 북한 사람들은 그걸 행정구역의 군(郡)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 북한 관리나 군인들은 특수부대나 은퇴군인모임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신조로 삼고 있는 경구가 있다면.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장 좋아한다. 마태복음 24장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절도 직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최후의 승자는 끝까지 견디는 자다.”

■ 박만희 사령관

1947년 충북 청주 출생. 75년 구세군 사관(목사) 임관. 구세군 마전, 안성, 서대문 영문(營門=교회) 담임사관. 구세군대한본영 교육부장, 인사국장 등 행정사관을 지냈고 2005∼2010년에는 행정을 총괄하는 서기장관을 역임했다. 2010년 10월 3일 제23대 사령관 취임. 김금녀 구세군 여성사업총재와의 사이에 2녀1남. 큰딸, 아들 부부도 사관이다.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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