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6) 현대인을 위한 죄 죽이기 기사의 사진

현대인을 위한 죄 죽이기 (존 오웬, 최예자역, 프리셉트)

이 책을 펼치면서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근처 문구점 앞에 흔히 있는 ‘두더지 죽이기’ 게임이었다. 상자곽 위에 볼록볼록한 형태들이 떠올라오면 얼른 방망이를 들어 내려치는 게임인데 여간 속도를 내지 않으면 여기저기에서 튀어 올라오는 자그마한 머리통들을 당해낼 수가 없다.

누군가는 죄를 “하루 종일 옆구리에서 재잘거리는 원숭이 같은 것”이라 했고 누군가는 “에일리언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기분 나쁜 것”이라 했는데 나는 ‘죄’하면 ‘두더지 죽이기’의 두더지 생각이 나는 것이다.

두더지 죽이기 게임에 나오는 두더지들은 한번 치면 죽는 시늉을 하고 얼른 땅으로 들어가 버리지만 결코 영원히 죽는 법이 없어서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내민다. 제아무리 힘껏 내리쳐도 금세 다시 올라와 서서히 지치게 만드는 두더지들과의 싸움은 그래서 끝나는 법이 없다.

저자 오웬은 종교개혁자 칼뱅과 18세기 대각성운동의 탁월한 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드와 함께 개혁주의 3대 신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저자 사후 400여년이 지났어도 그 영향력은 여전한데 특히 ‘죄죽임’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힘들고 지치기 쉬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죄와의 싸움은 왜 멈출 수 없으며 왜 승리해야 하는가를 마치 군사용 작전서처럼 박진감 있게 써내려간 것이 이 책이다. 한마디로 죄와의 전쟁에 휴전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그는 죄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죄는 전투적이고 적극적이다. 배반과 소란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죄의 본성이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퇴치하지 않는다면 더욱 엄청난 죄를 양산해낸다. 죄가 지향하는 바는 저속하고 누추한 방법으로 영혼을 파괴시키는 것이다…죄가 다윗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어떤 짓을 하도록 했는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죄는 항상 죄의 극단을 추구한다.”

논급은 깊이 이어진다. “죄가 우리를 미혹하거나 격동시킬 때마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 것처럼 우리 역시 죄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다 보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불결한 생각이나 눈짓은 간음으로, 탐심의 욕구는 탄압으로, 불신의 생각은 무신론으로 발전할 것이다. 죄는 이런 식으로 기회만 온다면 점점 뻗어나가 악의 정점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저자는 특히 ‘내주하는, 즉 안에 잠복하여 서식하는’ 죄의 음습한 습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둠을 틈타 접선하는 간첩처럼 죄는 우리 육체 속으로 파고들어 거점을 확보한다. 그리고 일단 진지를 구축하면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넘어뜨리고 만다. 학위를 몇 개씩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저명한 석학이거나 심지어 목회자라 할지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죄는 언제나 활동 중이며 언제나 우리 안에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경건하고 거룩하게 보이는 성도나 교회 지도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바로 이 ‘내주하는’ 죄의 속성 속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러스처럼 마음의 나라에서 활개치고 있는 죄까지를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이토록 치열하게 죄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래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다. 한편 교회를 향한 질타의 부분도 있다. 죄가 범람하고 창궐해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일깨우기보다도 ‘은혜’를 방패로 얼버무리려 한다는 것이다.

부패한 마음을 못 본 척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대신 ‘은혜’만을 강조하여 값싼 위로를 선물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죄를 묵인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죄를 다루는 개인도 문제이지만 교회 역시 책무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고 했던 요한의 시대와 비교한다면 현대 교회에서 죄를 다루는 문제는 너무도 개량적이고 온건하여 거의 방치하다시피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죄는 날이 가면서 집단의 논리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만 한정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점에서 볼 때 오웬의 목소리는 오늘날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선지자의 소리처럼 공허하고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허공에 울려 퍼지는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하다. 오늘날 우리는 너나없이 너무도 치명적이고 다양한 죄의 유혹 앞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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