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법’ 통과돼 공직자들이 청렴교육 받는 모습 기대” 기사의 사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26일 오후 서울 삼청동 거리. 차량들만 꼬리를 이을 뿐 인도를 거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일본인 여성 관광객 몇 명과 카메라를 들고 나선 젊은 커플만이 눈에 띄었다. 목도리로 얼굴 절반을 감싸고 편해 보이는 백을 든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약속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 전 위원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버스에서 내려 연락하겠다’는 문구를 본 기억이 났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버스나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27일 그는 국민권익위원장에서 물러났다. 관용 승용차를 타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시민들이 알아보지 않느냐 했더니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이 거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카페에 앉자마자 남편 강지원 변호사의 대선 출마 얘기를 꺼냈다. 남편의 출마 때문에 권익위원장에서 물러났지만 본인이 나서서 도와줄 일이 없었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19일 함께 투표하고 나란히 사진 찍은 게 내가 유일하게 도와준 일”이라며 웃었다.

언론과 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해선 아쉬움을 피력했다. 좋은 정책은 알려서 공유해야 하는데 언론이 다루질 않으니 알릴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소수의 의견도 알리기 위해선 선관위가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플래카드 한 장 붙이지 않고, 보이기 식으로 사람 만나러 다니는 것 거의 하지 않았다며 남편이 자랑스러워했다”며 “어찌 보면 돈키호테 같지만 이왕 정책선거 한다고 했으니 철저하게 한 건 잘한 일 같다”고 평가했다.

물러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 전 위원장의 고민은 부정청탁방지법(일명 ‘김영란법’)에 가 있는 듯했다. 부정청탁방지법을 언급하는 그의 목소리에선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김 전 위원장은 “국회까지는 보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을 마무리 짓지 못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법 통과를 낙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법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고 상당수 여야 의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총리실의 의지가 있는 만큼 법무부의 반대도 잘 조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박근혜 당선인 역시 이 법에 대해 긍정적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대희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 내놓은 친·인척 및 측근 비리 방지 대책에도 이 법안의 많은 내용이 반영돼 있다는 얘기도 했다.

“새 정부의 첫 내각에 내정되신 분들, 아니면 인수위원으로 선정되신 분들이 ‘우리는 청렴교육부터 받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이러면 멋지지 않을까요?”

김 전 위원장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이왕이면 새 정부 출범 전에 이 법이 통과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는 “공직자가 신규 채용될 때부터 청탁에 대응하는 법을 교육받아야지 청탁 문제가 불거진 후 처벌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독일 지멘스의 사례도 들려줬다. 지멘스 직원들은 하도급 업체에서 개최하는 세미나 등 청탁의 소지가 있는 자리에 대한 참석 여부를 사내 변호사에게 문의하고 그 답변에 따라 행동한다고 했다. 그는 “지멘스처럼 하면 부패로 인한 정책결정의 왜곡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다”며 “공공기관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법 통과가 중요하다고 했다. 매년 부패인식지수 순위가 하락하는 것은 국민의 부패 인식이 그만큼 민감하고, 변화를 열망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부패인식지수 개선을 위해선 부정청탁방지법 제정 등의 가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인터뷰 내내 김 전 위원장에게선 권익위와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감지됐다. 그는 “정부조직 개편을 앞둔 시기에 물러나 직원들에게 미안했다”면서도 “권익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권익위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부조직 개편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고충처리와 부패방지, 행정심판 등 권익위의 기능을 어디에 뗐다 붙였다 할지를 고민할 게 아니라 이 기능을 잘 수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담당자들이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정책 결정으로 인해 대형 갈등이 불거진 민원 현장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고 양측의 동의를 이끌어냈을 때 특히 보람을 느꼈다는 소회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갈등 초기에 주민이 원하는 바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면 문제가 커지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 조정을 시스템화하는 문제에 대해 권익위에서 연구를 해놨다”며 “새 정부에서 권익위의 이런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시스템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기 헌법재판소장 등 향후 공직을 맡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 전 위원장은 “솔직히 공직은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그런 일(공직을 맡는 일) 없기를 바란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곤혹스러워했다. 공직에 있으면서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자칫 스스로 하기 싫다고 국가를 위한 희생을 거부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었다.

그는 “그동안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고맙다”면서도 “더 봉사하라는데 건방지게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인 만큼 최대한 그런 고민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내년 3월엔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복직한다. 공부에 지친 로스쿨 학생들에게 휴식이 되는, 쉼표가 될 만한 강좌를 개설하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첨예하게 엇갈렸던 대법원 판결 중심으로 왜 그렇게 엇갈렸는지, 그렇게 엇갈리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학생들은 어떤 게 옳다고 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찾아보는 강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후 사진기자가 삼청동 거리에서 포즈를 요청했다. 젊은 여성이 힐끗 김 전 위원장을 바라보곤 지나쳐 갔다. 전셋집이 인근에 있는 김 전 위원장을 배웅하며 거리를 조금 걸었다.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 갔던 김 전 위원장은 권익위로 출근하면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삼청동에 전셋집을 얻었다. 매일 일찍 출근해야 하는 일이 끝난 만큼 이제 화성으로 가야 하는데 집주인이 아직 전세금을 주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며칠이야 기다려 주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라고 되묻는 김 전 위원장은 어느새 삼청동에 전세 사는 한 시민으로 돌아가 있었다. 기자와 인사를 나눈 김 전 위원장은 삼청동 언덕의 한 골목 안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날씨는 차가웠다.

글=정승훈 기자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sh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