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파랑새는 있다 기사의 사진

“고집이나 힘을 내려놓고 사랑을 실어 나르는 빈 배가 되어 강가에 선착하라”

젊은 커플이 외풍이 센 교외의 추운 집에서 살았다. 겨울 아침에 일어나보면 실내가 온통 얼어붙어있었다. 부부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는데 잘 때는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 붙어서 온기를 나누며 잠을 잤다. 그 집은 근처 고양이들의 커뮤니티센터 같이 돼 늘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왕래를 했다. 그래서 그런 녀석들까지 합세해 사람 두 명과 고양이 네다섯 마리가 함께 뒤엉켜 잠을 자는 날도 있었다. 살아가기에는 고달픈 날들이었지만, 인간과 고양이들이 자아내던 독특한 온기는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 있다.

외국 한 작가의 산문집에서 읽은 글이다. 집 나온 고양이라면 어떻게든 처치하려 하는 세상이다. 그런 고양이가 내 집 안에 와서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어한다. 이 글을 읽고 작가의 힘을 느꼈다. 그런 고양이들을 껴안고 잘 수 있다는 것, 껴안고 잠을 자던 날의 온기를 오래 기억한다는 것. 이 작가는 2000년대 들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다.

올해 패자부활 선언으로 화제를 모았던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의 김성근 감독의 저서에서도 그의 집안에 드나드는 주변의 고양이들이 잘 수 있도록 여름 집과 겨울 집을 마련해줬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김 감독은 승부사답게 고양이와 비둘기들이 사료를 쟁취하기 위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런 시각들이 세상을 재미있게 만든다. 특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남다른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동시대뿐만 아니라 세대와 시간을 넘어 광범위한 사랑을 받는다는 점이다. 한국서 가장 많이 팔린 세계문학서적은 미국 소설가 제롬 D 샐린저(1919∼2010)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한다. 출판사 민음사가 지난달 발표한 내용을 보면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중 이 책은 2001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75쇄 40만부 이상을 판매했다고 한다. 1951년 작품으로 작가 샐린저는 은둔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떴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주인공 홀든은 모든 것에 불만인 학생이다. 세상은 별 볼일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처음 만난 사람을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조차 못마땅해한다. 그의 반항은 그러나 독자들에게 아프게 다가온다. 억압된 자아로 고통 받는 청년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폭발적인 목소리를 들으며 독자들은 공감하고 그를 보호하고 싶어진다. 이 삭막한 세상에 그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아니 그를 가장 많이 읽고 있다는 것에서 파랑새를 느끼게 된다.

이런 사실들이 우리에게 얘기하는 것은 자기의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남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 말은 그가 대단한 권력이나 경제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문화적인 아우라를 갖고 있지 못하면 사랑받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우라가 먼 데 있지 않고 고양이라든지, 소외된 청년이 그리는 호밀밭이라든지 그런 평범한 것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무꾼의 아이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요술쟁이 할머니의 딸을 치료해 줄 수 있는 파랑새를 찾아 먼 곳으로 간다. 그러나 추억의 나라에서도, 행복의 궁전에서도, 미래의 나라에서도 파랑새를 찾지 못한다.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뜻밖에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새장 속에서 파랑새를 만난다. 파랑새는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볼 줄 아는 심안(心眼)이 없으면 볼 수 없다는 것을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일러준다.

우리사회에 새로운 힘이 형성됐다. 정권교체는 아니지만 집권세력이 교체된 것이다. 이들의 아우라는 권력을 얻은 것으로만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힘을 내려놓고 사랑을 실어 나르는 빈 배가 되어 겸손하게 강가에 선착(船着)할 때 뭇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우라, 그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내상(內傷)까지도 치료해 줄 수 있는 파랑새를 얻게 될 것이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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