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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모압 사람들 ①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모압 사람들 ① 기사의 사진

암몬처럼 롯의 아들이 조상이었지만 이스라엘과 등돌려

사해 동쪽 산지의 사람들

요단 동편 암몬의 남쪽 경계인 아르논 골짜기부터 남쪽으로 에돔의 북쪽 경계인 세렛 시냇가까지 살고 있었던 모압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과 상당히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암몬에 관한 고고학적 자료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처럼 모압에 관한 자료 역시 그리 많지 않다. 모압 사람들에 관한 대부분 자료는 아직도 성서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암몬에 대한 역사와 고고학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자료는 디본에서 발견된 메사 석비이다. 특히 메사 석비는 열왕기하 3장과 관련된 성서 역사와 본문 이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이 석비는 다음 호에 다룰 것이다).

모압의 영토는 사해 해변을 따라 위치해 있었고 북쪽의 경계인 아르논 골짜기는 암몬과 나누고 남쪽의 경계인 세렛 시냇가는 에돔과 나누고 있었다. 에스겔서 25장 9절에 의하면 모압의 국경 도시들은 북쪽에는 벧여시못과 동쪽에는 바알므온, 남쪽에는 기랴다임이 있었다고 한다. 이사야는 모압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주요 도시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사 15, 16장). 이 도시들에는 모압 아르(혹은 알), 모압 기르, 바잇, 디본, 느보, 메드바, 헤스본, 엘르알레, 야하스, 길하레셋 등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시들은 디본과 헤스본인데 디본의 경우 모압의 신이었던 그모스의 신전이 있었던 장소였다(사 15:2). 헤스본의 경우 아모리 왕 시혼이 한때 모압에게서 뺏은 땅이었지만(민 21:26) 결국 이스라엘이 출애굽 과정에서 모압 땅을 점령할 때 정복당한 곳이기도 했다(민 21장). 이 도시들의 이름과 메사 석비를 통해 우리는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히브리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모압어는 히브리어와 가장 유사한 언어로 문법적인 면은 물론 단어나 표현 방법에 있어 상당히 유사하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명사는 복수로 쓰일 때 단어 끝에 -im을 어미로 사용하고 모압어는 -in을 어미로 사용한다. 또한 히브리어 여성명사는 주로 -ah로 끝나는데 모압어는 -at로 끝난다.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다

암몬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도 자신들에게 우호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창세기 19장에 의하면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에서 몸을 피신한 롯과 그의 두 딸들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중 큰딸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모압으로 모압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창 19:37). 모압의 아버지가 된 롯은 원래 아브라함의 조카였는데 결국 모압은 아브라함의 핏줄인 셈이다. 이집트를 나와서 가나안 땅을 향해 진격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과의 전쟁을 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신 2:9) 그러나 암몬과 모압은 여호와의 총회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신 23:3). 이렇듯 혈족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암몬처럼 이스라엘에 적대감을 드러냈고 시혼에게서 헤스본을 빼앗는 광경에 두려움을 표현했다(민 22:3).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이라 불리는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전쟁의 결과를 미리 알려고 했지만 결국 여호와의 축복이 이스라엘과 함께함을 알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민 22∼24장).

그러나 모압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축복을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했고 모압의 신들에게 제사했다(민 25장). 결국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모압의 신들을 섬긴 자들을 죽였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악행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악행에 여호와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그들을 괴롭히도록 했다(삿 3:12).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왼손잡이 사사 에훗을 보내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했지만(삿 3장),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다시 모압의 신들과 다른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배신했다(삿 10:6).

풍요로운 땅

구약성서는 민수기, 신명기, 그리고 사사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당시 모압과의 관계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출애굽기 15장 15절에서는 모세가 홍해를 건너고 여호와를 찬양할 때 모압 영웅이 떤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요르단의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해 주전 12세기 이전의 모압 땅의 고고학적 흔적을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몇몇 고고학적 흔적 중 중요한 유적지는 아르논 골짜기 남쪽 10㎞ 정도 떨어진 발루(Balu)라 불리는 곳이다. 이 유적지는 성서의 모압 땅 알 혹은 아르라 불리는 도시(민 21:28; 사 15:1)로 추정되며 주전 3000년께 초기 청동기 시대부터 흔적이 발견되었다. 1930년 이 유적지에서는 이집트 왕의 모습이 조각된 석비가 발견되어 모압 땅까지 이집트가 진출했음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했다. 이 조각은 이집트의 람세스 Ⅱ세(주전 1279∼1213년)의 기록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람세스 Ⅱ세는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세운 자신의 거대한 석상에 가나안 원정 당시 정복한 나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중에 무압(muab) 즉 모압 땅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압은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 시작하여 에돔을 거쳐 암몬과 아람, 그리고 앗수르를 잇는 ‘왕의 도로(King’s way)’가 지나가는 곳으로 이집트가 이곳을 정복하고자 했던 이유는 명백하다. 모압은 이 도로를 통해 석회석과 사해에서 나오는 소금, 그리고 향유를 수출했다. 더불어 모압 땅은 비록 더운 장소이기는 하나 요단강 서편(이스라엘) 지역보다 훨씬 기온이 낮고 강우량은 높아 초목을 형성한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이곳은 양과 염소 같은 가축 떼를 키우는 데 용이했고 모압 왕 메사의 경우 이스라엘에 양털을 조공으로 바치기도 하였다(왕하 3:4). 이러한 풍요로움은 왜 베들레헴 출신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흉년이 있을 때에 모압 땅으로 피신하였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룻 1:1∼2).

유다 땅 베들레헴 출신인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은 가뭄과 기근 때문에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두 아들 중 하나는 모압 여인이었던 룻과 결혼했다. 이스라엘과 모압이 적대관계에 있긴 했지만 아마도 결혼은 성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탈무드의 유대 전통에 의하면 당시 이스라엘 여인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남성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룻은 남편이 죽은 후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로 와서 보아스와 결혼했고 다윗 가문의 조상이 되었다(룻 4:22). 사울은 모압과 싸웠지만(삼상 14:47), 모압의 피가 흐르는 다윗은 위급한 상황에 그의 부모를 모압 왕의 보호 아래 있게 하였다(삼상 22:4). 그러나 모압과 이스라엘 사이의 신뢰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왕이 된 후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그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다(삼하 8:2). 모압은 솔로몬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으며 모압의 여인은 솔로몬의 아내가 되었다. 솔로몬은 모압의 신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신전을 지어주고 여기에 제사했다(왕상 11:1, 7, 33).

<모압 사람들 계속>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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