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7) 뜻을 정한 인생 기사의 사진

뜻을 정한 인생 (홍정길, 도서출판 두란노)

새해가 되면 너나없이 새 계획을 세운다. 올해는 이렇게 살으리라며 뜻을 정한다. 그러나 대부분 1월의 달력을 넘기기도 전에 계획은 흐트러지고 뜻은 희미해진다. 한 해의 계획을 성취시키고 뜻을 완수하기가 이토록 어렵거늘 한 평생 뜻을 정하고 그 길로 매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싶다. 그래서 나처럼 의지가 허약하고 뜻을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한 사람은 다부지게 뜻을 세우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못해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뜻을 정한 인생’. 이 한 권의 책이 그토록 오랜 세월 내 서가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마치 이 책이 “그대는 뜻을 정했는가?” “그리고 그 뜻대로 삶을 펼쳐가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예컨대 뜻을 세우지도, 제대로 그 뜻을 향해 힘차게 걷지도 못한 채 비틀거리고 넘어지기를 다반사로 하는 나를 향해 던지는 경책의 메시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올곧게 뜻을 세우고 그 세워진 뜻을 향해 일사불란 걷고 있었다면 오래 전 이 책은 조용히 자리바꿈을 했을 터이다. 좀 요란한 다독가인 나로서는 한 달에도 실로 적지 않은 책이 쏟아져 들어와 서가의 메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책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조석으로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행한 일이기까지 한 것이다. 피가 펄펄 끓는 나이에 저자로부터 받은 이 책이 귀밑머리 희끗해지는 이 나이 될 때까지 내게 피하고 싶은 미완의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뜻을 정한 인생’은 다니엘서 1장 8절로부터 나오는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의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책은 전체적으로 강해 설교 형식이어서 다니엘서 외에도 성경의 여러 대목들이 등장한다.

어쨌거나 굶을지언정 왕의 산해진미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는 다니엘이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충성 그리고 헌신에 대한 뜻의 일환으로 세운 것이다. 결국 나약한 소년 다니엘의 그 위대한 뜻은 정복국가 바빌로니아와 그 왕을 영적으로 굴복시키는 대역사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 책은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그의 종과 군사가 되기로 뜻을 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생활의 첫 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 또한 일찍부터 뜻을 세우고 그 뜻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강남 한복판에 교회를 일구어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뒤 돌연 사임하고 다시 장애우를 위한 교회를 세워 온갖 어려움을 뚫고 성공시켰는가 하면 일찍이 해외 유학생 수련회인 KOSTA를 이끌고 젊은이를 위한 해외 선교에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열정. 그렇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 영적 거장에게는 기차 화통 같은 열정으로 채워져 있어서 도무지 멈추거나 쉬는 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잡초와 가시투성이의 전인미답 길을 즐겨 개척해 나간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장애 요인이 가로막으면 산은 넘으라고 있고, 강은 건너라고 있는 것이라며 결코 움츠러드는 법이 없다. 한번 꿈을 꾸고 뜻을 세우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것이다. 체구도 클 뿐더러 그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웬만한 장애요인들은 ‘어이쿠, 뛰자’하고 도망칠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허다한 한국 유명 목사들이 격무에 지치고 시달려 음지식물 같은 느낌을 주는데 반해 저자는 일흔이 넘었는데도 몸에서 김이 펄펄 날 듯한 에너지 충만한 모습이다. 이것은 드물게 보이는 축복인데, 그이는 하나님이 주신 이런 힘과 에너지를 그분을 위해 작정한 뜻을 집행하는 데 잘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오래 전 만났을 때 차와 다과를 들기에 앞서 저자가 기도를 하는데 기도 중에 굶주린 북한 동포 얘기가 나왔다. 속으로 ‘커피 한 잔 놓고 웬 북한 동포씩이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그때부터 북한을 드나들기 시작하고 있었고 이제는 수십 차례를 헤아릴 정도가 된 것이다. 이 역시 그이의 힘과 에너지가 아니었으면 엄두를 못 낼 일인 것이다. 언젠가는 중국을 방문해 대학 총장이자 공산당 간부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공산주의의 문제점으로 정보의 독점과 신앙의 자유 문제를 꺼내 가슴이 덜컹 한 적도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을 거침없이 비난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이며 지도층에 대해 입도 뻥끗 못하는 당신네 체제는 정말 문제”라고 일갈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사님, 왜 그러셨어요”라고 했더니 “괜찮습니다. 할 말은 해야지요”하면서 예의 그 호탕한 웃음을 웃었다. 아마 수없이 북한을 드나들며 뼈에 저린 속내를 털어놓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얼마 전 베트남을 여행할 때 자신의 목회일선에서의 은퇴 소감을 노랫말로 만들어 불렀다. 그때 나는 목사님은 이제 굳이 설교준비 안 해도 그 호탕한 웃음을 한번씩만 웃으셔도 설교 못지않은 효과를 줄 것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자 “그렇습니까?”하고 또 호탕하게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면 모든 근심걱정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으니 설교 못지않은 효과인 것이다. 언제나 차세대 리더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던 저자는 어느새 목회일선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석양 저 너머로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번 뜻을 정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거침없이 걸었기에 그 뒷모습마저도 아름답기만 하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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