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소설가 이문열, 보수를 말하다 “문화 쪽은 진보가 98% 장악 보수색 드러내면 즉시 불이익” 기사의 사진

성공한 소설가인 이문열(65)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보수층을 대변하는 정치적 인물이 돼버렸다. 소설가인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항상 정치적으로 해석됐다. 진보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우리 문단의 독특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름난 양반가의 후손, 아버지의 월북 등으로 점철된 개인사의 영향일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이 열린 지난 6일 자택이 있는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을 찾았다. 부악문원은 현대적 개념의 서원으로 1998년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문학인과 인문학자 지망생들의 토론장으로 활용하다 지금은 창작 레지던스로 변했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 옆 부악문원 안의 자택은 겨울의 잔설이 햇볕에 반짝이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에서 이른바 진보인사들로부터 당한 억울했던 사연을 말할 때는 열띤 어조였다. 마음의 내상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듯했다. 같은 보수 인물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듯했다. 아니 본인이 당선된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3시간여 동안 진지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거침이 없었다.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비유는 명불허전이었다.

-최근 사회가 너무 보수화되는 것 아닌가. 헌재소장도 그렇고 보수 색채가 짙어지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 안 될까 걱정 많이 했다. 왜냐하면 또다시 저쪽에서 집권하면 (보수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MB는 정치는 잘했는지 모르겠으나 문화 장악력은 전혀 없었다고 본다. 본인 정치의 홍보는 고사하고 자기가 한 것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방어도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인데, 거액을 거기에 써야 하느냐는 문제는 있지만 성공과 실패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지 않느냐. 500만표나 이겼다면 비록 그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정당성은 있는 것인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보수와 진보 저마다 역할을 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지 않았나. 아직 정부 출범 전이지만 이 정부가 정말 잘해야 한다. 초반 분위기가 다소 보수 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지만 잘하리라 믿는다.”

-최근 장편 ‘리투아니아 여인’으로 동리문학상을 받은 소감은.

“동리 선생은 해방공간에서 당시 좌익 문학이론가와 외롭게 싸운 사람이다. 군사독재시절 문인이 정치에까지 개입할 필요가 있느냐며 순수문학을 지키려 한 데는 이론이 있지만 나로서는 그와의 남다른 인연도 있다. 상금도 예전에는 3000만원으로 주로 신인급에 주어졌는데 한 단체의 지원으로 7000만원으로 대폭 오른 이후 중진 몫이 됐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주목할 만한 발언이 없었는데.

“문인 100여명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는데, 솔직히 그 정도 숫자면 활동하고 있는 문인 대부분을 망라한 숫자 아니겠나. 유권자는 보수와 진보가 5대 5 정도인데, 이런 현상은 비정상적이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문인들이 보수라고 색을 드러내는 즉시 당하는 불이익이 하도 커 감히 본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수는 완전히 초토화됐다. 어쨌든 반미가 들어가야 흥행이 되고 행세하는 분위기가 돼버리고 말았다.

-문인이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 않나.

“문인은 그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왜 문인이 진보적이어야 하나. 보수와 진보를 정치적 대척점에 두고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파악하는 것은 잘못됐다. 보수와 진보는 세상에 대한 인식태도다. 진보는 현실에 대한 부정의 감정을 갖고 새로운 세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보수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실세계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해서 이뤄낸 역사적 산물인 만큼 이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지만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나는 보수와 진보 양쪽의 극단에 서 있는 자들을 경계하는 것이다. 서로를 원수처럼 보고 상대방을 때려 부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보수가 됐든 진보가 됐든 잘못됐다.”

-진보세력 또는 좌파로부터 한때 공격을 심하게 당했는데.

“여성운동이 별 주목을 못 받을 시기에 마침 ‘선택’이라는 내 소설이 발표돼 타깃이 됐다. 운동이란 타깃이 있어야 동력이 생기는 것 아닌가. 사실 이 소설로 한 여성단체는 여성성을 확장시켰다고 나에게 상도 줬다. 반면 그해의 여성운동 걸림돌 1호란 별호도 얻었다. 요즘 사람들의 반의고적 경향, 특히 양반 문화에 대한 적의에 대해 근거 없고 비뚤어짐을 따지자면 따로 책 한 권이 필요할 정도다. 그것은 이 나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부인하는 일이 되고 나아가서는 자기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 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것이 이 시대의 엄연한 추세이다.”

-근래 목소리를 높인 진보에 대해서 한마디.

“미국의 여성운동도 이제 남녀평등을 넘어 동성애 문제 등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고 한 탤런트는 개념탤런트가 되고, 아직 잘 모르니 함부로 말하지 말자고 한 연예인은 집중포화를 맞고 브라운관에서 사라지는 것이 말이 되는지. 작가나 대학교수(안철수 교수를 지칭하는 듯)가 연예프로에 나와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르는 등 방송의 편식이 심한 것 같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정책은 제대로 펴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진지에 사령관은 보냈지만 그 사령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전 문화권력이라고 지칭되던 세력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일반 국민은 보수와 진보가 50대 50인데 문화 쪽은 진보가 거의 98%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체 작가가 망라돼 있는 단체에 정부의 문화 지원금이 제대로 내려오고 있지도 않다. 이명박 정부는 정치가 문화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김지하 시인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비판에 대해서는.

“모두 맞는 말은 아니지만 10개 가운데 7개 정도는 옳은 말이다. 사실 소셜리얼리즘(사회사실주의)은 이미 흘러간 것인데 그걸 붙잡고 있으니. 정치컨설턴트는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쑥부쟁이인 것은 확실하고. 한류에 방해된다. 김지하 시인이 보수 입장에 선 게 처음엔 의외였는데 기고문을 읽고는 올 사람이 왔구나 싶었다. 백 선생의 예술론 기준으로 보면 가수 싸이도 뜰 수 없고 드라마 ‘대장금’도 해외에 진출 못한다. 낡아빠진 소셜리얼리즘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우리 문학의 세계화엔 아주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한류에 관한 한 쑥부쟁이도 그런 쑥부쟁이가 없다.”

-문학의 한류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드라마나 노래가 지금 외국으로 많이 퍼져가고 있지만 긴 관점으로 보면 우려스러운 면도 있다. 이렇게 잘 나가다가 중간에 끊어지면 한류의 한계를 보이는 것이 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신경숙의 소설이 문학한류의 시발점으로 성공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음악이나 미술에 비해 글은 정교한 번역이 요구되는 만큼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노벨 문학상을 언제쯤 탈 것 같나.

“스웨덴에 가서 보니 스웨덴이 노벨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 만했다. 일본과 중국이 탔기 때문에 우리도 분명히 근처에는 와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상에 너무 미련을 갖지는 말았으면 한다. 유럽 작가의 모델인 톨스토이도 받지 못했다. 위대한 비수상자로 남을 수도 있지 않나. 우리 선수(동료 문학인을 지칭)끼리는 다 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상을 노리고 작품 성향을 바꿨다는 등의 이야기도 한다. 너무 목을 매는 것은 좋지 않다. 그 상이 문학의 완성에 대해 준다기보다는 일종의 공로를 보고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역사에 해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은 우리 역사를 단군, 고조선,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신라의 3국 통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발해가 망한 뒤의 고려를 정통으로 보고 있다. 사실 우리로서도 고약한 측면이 있다. 북의 역사인식이 우리와 다르긴 하지만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그 많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다 중국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 아닌가.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 싶다.”

-인터넷과 별로 친할 것 같지 않은데 자주 이용하는가.

“인터넷에 들어가기가 겁난다. 내가 이가 약간 다른 사람과 달라 웃는 사진을 잘못 찍으면 흉측스럽다. 왼쪽 뺨도 잘못 사진이 확대되면 포악스럽기 그지없는 얼굴이 된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가면 온통 그런 사진밖에 없다. 인터넷 광장이 특정 세력에 점령돼 있지 않는가. 인터넷을 점령한 소수가 어떤 사안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가를 내리면 나머지는 다수의 의견인 줄 착각하고 그대로 따라가지 않나. 스스로 다수로 보이는 주장에 동의하는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그는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75일 동안 활동한 것이 정치행위의 전부인데 상당히 억울하다고 말했다. 요즘 일부 문인들이 사실상의 정치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괜찮고 자신이 한시적으로 활동한 것만 문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니냐는 것. 최근 그는 1년만 다닌 모교인 안동고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고 했다. 명예졸업장은 자신이 3번째인데 앞의 두 사람은 6·25 때 전사한 동문이라고 한다.

만난사람=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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