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마다 철심처럼 박힌 우리 가락… 육근상 첫 시집 ‘절창’ 펴내 기사의 사진

육근상(53·사진) 시인이 첫 시집 ‘절창’(도서출판 솔)을 냈다. 1991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니 22년 만에 자식을 본 셈이다. 가임 기간이 길었던 만큼 곡절이 없지 않다. 젊은 날, 서울의 한 출판사에 시집 원고를 건넸으나 출판사가 망하는 바람에 거칠게 인쇄된 전단지 같은 시집을 덜렁 받아들고 실망한 나머지 그는 시를 멀리 했다. 시집이 휴지조각처럼 너덜거렸다. 그러다 5년 전부터 문단 선후배들의 설득으로 다시 시를 붙들었다. 애면글면한 세월에 넋두리가 섞여 있을 법도 한데 그의 시는 더없이 정갈하다.

“일흔 노인 소리를 듣는다// 득음에서는 관악기 소리가 나는 걸까/ 하도 불어 속이 다 닳아버린 오죽(烏竹)의 숨구멍으로/ 잘 익은 퉁소 소리 난다// 참, 처량하기도 하다// 도우도우 갸릉거린다/ 중모리로 간신히 넘어가는 저 노인 앓는 소리는/ 지금 애미(哀未) 고개 넘어가는 중이다”

시인은 젊은 시절, 소리꾼들이 많이 살고 있던 대전 대청댐 수몰지구인 ‘동면’을 찾아가 판소리를 즐겨 들으며 소리를 닮은 시를 쓰고자 했다고 한다. 그런 취향은 지금도 이어져 그는 우리 소리에 심취해 있다. “바람의 손잡이 잡고 등짝을 한번 후려쳐봐 울림이 클 탱께/ 아둥이 단속 심했던 대장장이가 벌겋게 달아오른 노을을 마흔아홉 번이나 구부렸다 폈다 만들어낸 걸작이 바로 저 강이여”(‘징’)이라든지, “가죽 한 번 제대로 갈아 끼우지 못하고 일흔두 해 두드린 뱃바닥에/ 썩은 것들 모두 욱여넣었는가”(‘북’)는 그런 취향의 소산이다.

그런가 하면 소년 시절,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대전 천개동 산골마을을 자주 오갔던 기억을 떠올린 시편들도 있다. “물봉선은 이미 많은 이야기 풀어놓고// 산댓닢 다 된 사람들이/ 끊어진 길 다시 엮으며 산으로 들어간다// 여기가 천개동인가// 까맣게 타들어간 산중/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할 구름이/ 비늘 세우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머리도 길게 풀어헤치고/ 꼬리 긴 산 닭처럼”(‘천개동 시편-서시’ 전문)

시집이 휴지가 되는 것을 경험한 육근상의 시엔 우리 가락이 철심처럼 박혀 있다. 언젠가 폐지가 되고 말 시집을 누가 태운다 한들 철심은 벌겋게 달아올라 목청을 가다듬을 것이다. 시는 그에게 하나의 긍정이며 화해의 멍석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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