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8) 기도는 전투다 기사의 사진

기도는 전투다 (C 피터 와그너, 명성훈 역, 서로사랑)

기도는 전투다. 굳이 ‘전투’라는 살벌한 용어까지 써야 될까 싶지만 기도는 전투다. 살고 죽는 것인 만큼 전투임이 분명하다. 기도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지고 만다. 기도가 전투라는 것을 안다 해도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번쩍이는 검을 들고 비장하게 나서지 않는 한 당신은 역시 지고 만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피비린내 나는 영적전투이다. 이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언론을 통해 인간이 저지르기에는 너무 끔찍하고 엽기적인 사건을 접할 때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들어가 하나의 인간을 저토록 몰고 가는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개인이 말로 다 못할 고난과 헌신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에서 구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저 특별한 존재 안에 어떤 힘이 있어 저토록 놀라운 위대함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가 싶은 것이다.

이처럼 선과 악의 문제를 놓고 볼 때 기도는 전투라는 저자의 비장한 정의가 십분 이해된다. 사실은 C 피터 와그너 훨씬 이전에 우리의 스승 되신 예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수시로 당부하셨고 절체절명의 순간을 앞두고는 제자들에게 기도로 자신을 도와 달라 간청하셨을 정도로 기도의 힘은 악을 이기는 가장 강력하고도 현실적인 무기였던 것이다.

기도가 승패를 가르는 한 요인임을 극명하게 보이는 사건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명한 아말렉 전투이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출애굽기 17장 11절) 사건이 나오는 것이다. 손을 드는 것은 기도를 하는 것이고, 손을 내리는 것은 기도를 쉬는 것이다. 아예 손을 들지도 않거나 들어도 금방 내리는 세대나 국가는 영적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영적 승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명운 또한 쇠퇴한다. 개인이나 집단 혹은 국가의 논리는 철저하게 ‘영혼의 잘됨’이 우선이고 순차적으로 모든 일은 영혼의 문제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2차 대전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아돌프 히틀러라는 한 왜소한 인간이 그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유약해 보이는 한 개인의 가공할 악의 영향력은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인물의 출생 자체가 재앙의 예고였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동물애호가여서 일찍이 뮌헨에 있는 오리가 베를린까지 갈 수 있도록 수로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자신은 건강을 염려해 평생 술 담배를 멀리한 채식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성적으로도 금욕적 태도를 견지해 에바 브라운이라는 여성 한 사람과만 교제했으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미술 건축 음악 등에 높은 예술적 감성을 지닌 교양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1차 대전 후 실의와 낙담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빠른 시간 안에 경제를 복구시켜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인의 행복과 변영을 위해 헌신해서 그를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떠받드는 이들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그런 히틀러에게 악의 기운이 역사하기 시작하면서 참으로 엄청난 일들이 현실의 지평 위에 자행됐다. 오래전 다하우라는 유태인 수용소를 돌아보면서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나는 선이 현실인 것처럼 악 또한 추상이 아님을 절절히 느꼈다.

이 책은 실재하는 악을 역사하는 사탄과 그 졸개들의 존재를 결코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물론 지나치게 확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언급한다. 기도의 불병거가 있는 한 사탄과의 싸움을 겁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무리 막강해 보여도 사탄이 무소불위할 수 없는 피조물인 까닭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 도시나 나라의 영적 전투 부분이다. 미국을 비롯한 아르헨티나와 남미 여러 나라, 그리고 와그너 자신의 가정을 악령이 어떻게 흔들었는가를 예로 들고 있다. 그는 기독교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나라로 한국을 들면서 한국에 왜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가도 역설한다.

하나님의 복을 많이 누리는 듯이 보이는 도시와 국가를 점령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야말로 사탄의 목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영적 보루인 교회는 오늘날 많이 약화되어 있다. 문명의 온갖 편리 또한 교회와 기도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전화의 잿더미 속에서 통곡의 기도로 기적적 발전을 한 한국은 그 기도의 자리에 바벨탑처럼 자본과 IT를 세워놓고 있다. 허다한 교회에서 사탄이나 귀신 같은 용어를 거북해할 뿐 아니라 그 실재에 대해서도 동화나 전설처럼 대하고 있다. 어느덧 사탄이니 귀신이니 하는 용어는 교양 있는 기독교도에게는 미간을 찌푸리게 할 만큼 상스러운 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경고한다. 당신이 그 존재를 인정하는가 안 하는가와 관계없이 악은 현존하며 암약하고 있다고. 마치 성령이 실존이며 기도하는 자에게 역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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