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이긴 자의 용기 기사의 사진

“아직도 전선은 불타고 있다. 이긴 사람들이 말을 아끼고 진 사람들을 포용해야”

대통령 선거의 여파가 의외로 길다. 선거가 끝나고 한 달이 돼가고 있음에도 우익과 좌익 양 진영의 싸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선에 대한 회고와 반성은 필요하다. 거기서 방향과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승자나 패자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말싸움은 회고와 반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전선은 불타고 화염은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선이 우파와 좌파의 총궐기 양상이 돼가고 있고, 그것은 점차 내전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를 갖게 한다. 싸움의 전면에 나선 정예의 전사들과 그를 부추기거나 지원하는 주력부대원들은 상당수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김지하 시인의 일련의 발언이다. 대선 전에 있었던 그의 말과 글은 제외하고라도 선거전이 끝난 후에도 좌파 공격은 진행중이다. 1월 8일자 CBS 인터뷰에서 그는 “문재인이 내놓는 공약이나 말하는 것 좀 보시오. 그 안에 뭐가 있어요? (…)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 “윤창중이라는 사람을 그 시끄러운 대변인으로 앉힌 게 잘 한 거예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48%의 국민에 대해) 공산화 세력을 좇아가니까 공산화 세력이 된 거지”와 같은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9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안철수는 깡통이야. 끝났다니까. 정치란 게 하고 싶다고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냐. 미친 사람 아니야? 그런 사람 데려다 뭐에 써먹어”라고 말한다. ‘×발 새끼들, 자기 자식들은 대학 졸업시켰으니까. 대학 못 보낸 부모 한은 모른다’와 같은 욕설도 나온다. 원로 시인이 문학적 담론의 장이 아니라 공공언론의 장에서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을 몰아치는 것은 과거에 보기 어렵던 일이다.

작가 황석영씨의 발언도 할퀴는 구석이 있다. CBS 인터뷰에서 그는 “이제 우리 세상 왔다고 점령군처럼 나대서 앞으로 5년 내내 갈등과 불신만 깊어질 것 같다”거나 “이제 우리 세상이니까 너희들은 찍소리 마라는 식으로 이렇게 색깔론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 중심에는 자기 진영이 아니면 대통합은 어렵고 세상도 잘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있는 것 아닐까.

소설가 이문열씨는 9일자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보수와 진보 양쪽의 극단에 서 있는 자들을 경계한다. 서로를 원수처럼 보고 상대방을 때려 부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보수가 됐든 진보가 됐든 잘못됐다”고 말한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수가 완전히 초토화됐다”거나 “일반 국민은 보수와 진보가 50대 50인데 문화 쪽은 진보가 98%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발언은 편벽해 보인다.

작가 장정일씨는 12일 한겨레신문에 게재한 ‘글 밖의 김지하, 서글픈 자기 분열’에서 김지하 시인이 돈이 없어 두 아들을 대학에도 보내지 못했다고 한 데 대해 “사실과 달리 그의 장남은 모 예술전문대를 일찌감치 졸업했으며, 2003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에는 영국 런던의 명문 미술 학교에 재학 중인 차남에 대한 자랑이 번히 나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지하같이 특A급 필자는 아무 글이나 뚤뚤 뭉쳐 조선일보에 갖다 던지기만 해도 등록금 정도는 너끈히 나온다”고 받아친다.

이런 논쟁은 우리가 이념전쟁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최전방에서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격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독재시절에 억눌린 사람들이 참지 않고 권력자들에게 ‘세게’ 말하는 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자유언론 시대에 이긴 사람들이 진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할 말 다하는 것을 용기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것을 시민사회의 언로(言路)라고 한다면 사회는 큰 시끄러움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긴 자들이 말을 아끼고 진 자를 포용하는 것이 대의(大義)로 여겨지던 시절은 간 것인가.

편집인 so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