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獨 형사법 전공 류여해 박사에게 듣는 ‘한국의 법’ 기사의 사진

독일은 입법과정 세밀히 기록… 한국은 재탕·삼탕 발의 난무

우리나라 형법은 일본 법을 근간으로 삼았고, 일본 법은 독일 법을 전범(典範)으로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 형법이 독일 법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독일 법체계만 모방했을 뿐 정작 중요한 독일 법의 정신과 내용은 제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꿈결)의 공동저자 류여해(40) 박사가 독일에서 박사학위(형사법) 논문을 준비하면서 경험한 일과 국회 사무처 법제실에 근무하면서 체험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국회가 얼마나 날림으로 법을 제·개정하는지 알 수 있다. 류 박사를 만나 독일 법과 한국 법의 차이, 우리나라 입법과정의 난맥상, 문제투성이인 법률과 양산되는 특별법의 문제점, 개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만난사람=염성덕 논설위원

-국제형사재판소(ICC)와 관련한 독일 법과 한국 법을 비교한 박사논문을 썼다. 먼저 독일의 입법과정을 설명해 달라.

“독일은 육하원칙에 따라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도 주석을 달아놓았다. 법률 제·개정에 참여한 이들의 발언 내용과 의도를 포함한 모든 입법과정을 한 권의 자료집으로 내놓았다. 나중에 누가 보더라도 법을 만들면서 주고받은 의견과 무엇을 고민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말 한마디, 단어 하나도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에 입법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국의 입법 과정도 비슷하지 않나.

“한국의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누군가가 정식으로 법안을 발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규약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 법은 형사법에 속하지만 형사법 전문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고 대부분 국제법 학자들의 견해를 반영했다. 베끼고 짜깁기한, 그래서 표절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입법과정이 그 정도로 허술한가.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처 법제실이 모두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국회의원 문제부터 지적한다면.

“재탕 삼탕이 난무한다. 발의됐다가 폐기된 법안을 그대로, 또는 문구 일부를 고쳐서 차기 국회에 제출하는 식이다. 애초에 발의한 의원이 낙선하면 그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먼저 보는 의원이 임자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법에 정통한 보좌관을 두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대충 법을 만들고는 위헌문제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입법과정에서부터 위헌 여부를 다뤄야 한다. 법 제·개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권집단들의 입김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택시법’도 경영진 배만 불릴 뿐이다. 택시 기사들에게는 혜택이 거의 돌아가지 않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된다. 법률의 질적 향상을 담보하지 않은 양적 팽창은 인력과 예산을 불필요하게 소모시킨다. 마구잡이식 법안 발의는 소관 상임위원회가 심층적으로 다루거나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중요한 법안을 논의할 시간을 빼앗게 된다. 국회의원의 입법과정이 이 정도인데, 광역의회 의원과 기초의회 의원의 입법 행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법제실에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을 텐데.

“전체 구성원을 볼 때 변호사와 입법고시 출신은 아주 적다. 또 일부는 긍지와 책임감을 갖고 정말 열심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독일과 미국 등의 의회 법제실은 대부분이 다양한 법률 분야의 박사와 전문가들로 채워져 있다. 법 전문가들이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때문에 법안 폐기율이 우리나라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우리나라의 법안 가결률은 16대 27%, 17대 21.2%, 18대 13.6%로 점점 줄고 있다. 국회 법제실이 국회의원들의 발의 입안 건수(의원발의법률안+위원회제안법률안)가 16대에서 18대로 갈수록 늘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내지만 법안 가결률을 보면 얼마나 많은 법안이 폐기되거나 철회되는지를 알 수 있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폐기 또는 철회된 것을 포함해 문제 있는 법안의 사례를 든다면.

“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 발생한 폭력 행위에 대해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데이트 폭력 금지법안’이 대표적이다. 형법의 폭행죄로 처벌해도 되는 사안을 특별법을 만들어 엄하게 처벌하자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법은 국민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기능해야지 남용된다면 그 해악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피의자 얼굴을 무조건 공개하는 내용으로 특정범죄강력처벌법을 개정하자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위헌 문제가 제기될 것이 뻔하다. 무작정 법을 만들고 위헌 여부 따지고…. 이건 아니라고 본다. 청소년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 형사상 미성년자의 연령(14세 미만)을 낮추자는 여론이 들끓는다. 그러면 A의원실에서 13세 미만으로 하자는 법률 개정안을 들고 나온다. 뒤늦게 법률 개정 작업에 뛰어든 B의원은 12세 미만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법안이 모두 발의 건수로 잡힌다.”

-농수산물 시장에서 경매하는 것처럼 각각의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 모두 건수로 잡힌다는 건가.

“그렇다.”

-법체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법률을 꼽으라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여성가족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법무부)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여성가족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법무부) 등이다. 법률에 따라 법을 적용하는 나이가 다르고 법정형이 다르다. 부처별로 힘겨루기를 하는 바람에 이상한 모양새의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성 관련 법’으로 재정비 또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의 경우 형법의 폭행죄나 형법의 특별법인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면 될 것을 소관 부서가 다른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특별법을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하나의 범죄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의 종류가 많으면 검찰과 경찰의 자의에 따라 다른 법을 적용하고 형량이 달라질 수 있다. 위법한 사실이 분명한데도 범죄인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함수 관계에 따라 낮은 형량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많다. 이렇게 되면 힘없는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

-경범죄처벌법이 경찰에게 과도한 법적 재량권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맞는 말이다. 이건 정말 국민에게 족쇄를 채우는 법이다. 경범죄처벌법으로 해마다 10만명가량이 형사처벌을 받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에는 금연장소에서의 흡연과 쓰레기 무단 투기 등으로 30여만명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검사나 판사의 견해를 묻지도 않고 경찰관의 자의적인 단속만으로 국민을 형사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독일은 형벌권과 행정형법의 영역 중간쯤에 해당하는 불법을 질서위반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와 시·군·구 조례를 적용해 과태료로 처리할 수 있는 행위를 분류하고 나머지를 질서위반죄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경범죄처벌법을 정리해야 한다. 경범죄처벌법은 법 적용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고, 처벌 여부의 재량권을 경찰에 일임한 것이다. 공권력이 법을 가지고 흥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면 절대로 안 된다.”

-우리나라는 금융범죄에 대해 가벼운 처벌을 하고 있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검사와 판사들이 달라져야 한다. 재벌의 범죄에 대해 재판부는 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다. 우리나라 법에 집행유예의 조건을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금고형에 대해서 정상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동안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집행유예를 받은 재벌 오너들은 특별사면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한다. 핀란드 독일 등에서 채택한 일수벌금제가 대안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동일한 범죄에 동일한 액수의 벌금을 부과하는 총액벌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는 부자에게는 형벌 효과가 미미한 반면 저소득층에게는 가혹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수벌금제가 논의된 적은 있으나 도입되지는 않았다. 개인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입할 경우 봉급생활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원(稅源)이 투명한 사회를 지향해 가면서 일수벌금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을 회상한다면.

“우리 국민은 3심제를 기본으로 생각한다. 업무가 폭주하다 보니 재판연구관들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한다. 정말 열심이다.”

-재판연구관보다 격이 낮은 국회 사무처 법제실로 간 이유는.

“우리 법체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큰 틀에서 법을 정리하고 제정하고, 특히 내 전공인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법을 고치고 싶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저서를 통해 내부 고발자 역할을 자임했는데 불이익은 없었는지.

“내부 고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할 공무원이다. 공익 분야에는 공익신고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고생은 했다.”

-법률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법률안 발의, 입안, 제정 과정에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업무 중복과 시행착오로 인한 비용 낭비를 줄이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실효성 없는 재탕 발의도 금지시켰으면 좋겠다. 로비를 통해 법률이 제정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나 시민사회단체가 할 일이 있다면.

“독일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은 국민의 깊은 관심과 애정 어린 감시 속에서 제대로 설 수 있었다. 독일 국민이 법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입법기관과 사법기관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헌법 형법 민법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법전을 대부분 소유하고 숙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들 법전은 생필품처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래야 한다. 우리는 법제처와 국회 사이트에 접속하면 법률을 접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독일보다 우리 시스템이 잘 돼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오락이나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법률 공부를 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악법이라도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폐기하기가 어려운 만큼 국민이 국회를 감시하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류여해 박사

△건국대 법학과△이화여대 법과대학원△독일 예나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교 석·박사(형사법 전공)△대법원 재판연구관△국회사무처 법제실 법제관△한국사법교육원 교수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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