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첫 손님 돈 받고 침 뱉는 국숫집 아낙처럼 봄은 또 오나니… 기사의 사진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 낸 시인 이성복씨

섬세하면서도 평이한 언어로 우리 시대의 정신적 위기를 노래해온 이성복(61) 시인이 10년 만에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이후 ‘아, 입이 없는 것들’(2003)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는 항용 충격과 매혹을 동반하며 우리 삶의 허기를 달래준다. 그는 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번 시집엔 또 무엇이 담겼을까.

그는 2006년 여름,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갔다가 전시회 주제이자 이두문자로 쓰인 신라향가의 한 구절인 ‘래여애반다라’에 확 끌렸다고 한다. 시인에 따르면 ‘오다, 서럽더라’라는 뜻의 이 이두문자를 의역하면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맛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다(羅)’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탯줄을 끊고 이 세상에 나온 우리들은 누구나 ‘생사성식(生死性食)’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이제 이순에 접어든 시인의 눈은 그 운명의 수레바퀴를 한 순간에 개관하고 있다.

“그날 밤 동산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헐떡거리던 청년의/ 내려진 팬티에서 검은 고추, 물건, 성기!/ 이십 분쯤 지나서 그는 숨을 거뒀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오늘 밤에도/ 그의 검은 고추는/ 아직 내 생 속을 후벼 판다/ 못다 찌른 하늘과 지독히 매운 성욕과 함께”(‘오다, 서럽더라 1’ 전문)

절망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생의 ‘불가능성’을 곱씹는 이성복의 목소리는 시종 담담하고 또 허허롭다. 모두 여든두 편의 시들은 마치 신라의 오랜 유적에서 출토된 것만 같은 의고체(擬古體)에 기댄 듯한 아포리즘으로 점철돼 있으니, 가히 생의 진실을 일깨우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검은 장구벌레 입속으로 들어가는/ 고운 입자처럼/ 생은 오래 나를 길렀네// 그리고 겨울이 왔네// 허옇고 퍼석퍼석한 얼음짱,/ 막대기로 밀어 넣으면/ 다른 한쪽은 버둥거리며 떠오르고,/ 좀처럼 신열(身熱)은 가라앉지 않았네// 아무리 힘줘도/ 닫히지 않는 바지 자크처럼/ 무성(無聲)의 아우성을 닮았구나, 나의 생애여// 애초에 너는 잘못 끼워진 것이었나?// 마수다, 마수! 첫 손님 돈 받고/ 퉤퉤 침을 뱉는 국숫집 아낙처럼/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생이여// 어떻든 봄은 또 올 것이다”(‘래여애반다라 9’ 전문)

이 시처럼 우리는 가볍게 들어가 무겁게 나오도록 배치된 이 세계의 출구 밖에 서서 평생을 아파한 시인의 성찰을 만나게 된다. 그 성찰이란 “노래가 알지 못하는 이번 생의 기억은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처럼 발이 시리다”(‘노래에 대한 각서’)라든지 “생쥐같이 노란 어떤 것이 숙변의 뱃속에서 횟배를 앓게 한다 하리라 여러 날 굶은 생쥐가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엉덩방아 찧다가 끝내 날개를 얻었다 하리라”(‘생에 대한 각서’)에서 드러나듯 소멸하는 삶, 닳아지는 육체에 대한 시인의 깊은 시선과 사유이다.

이성복은 ‘시인의 말’에 썼다. “문학이 소중한 것은 검은 보자기 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는 사진사처럼 한 순간, 한 순간 불가능을 기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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