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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박병권] 진보세력에 거는 기대

[여의춘추-박병권] 진보세력에 거는 기대 기사의 사진

“노동자와 농민, 서민층을 위한 정책을 제시할 때 분명 집권기회가 올 것이다”

위대한 중국 혁명가 마오쩌둥의 어록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일 것이다. 작고한 이영희 선생의 ‘8억인과의 대화’에 소개돼 예전 학생운동권에서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보다는 ‘혁명은 상대방이 약해야 성공한다’라는 그의 말에 더 관심이 갔다.

중국 역사에 해박하고 ‘삼국지’를 수십 번 읽었다는 마오의 어록이고 보면 뭔가는 있을 듯해 속뜻을 새기며 반추에 반추를 거듭했던 기억이 새롭다. 반란이 성공하면 혁명이 된다고 볼 때 중국 역사상의 숱한 반란 가운데 성공 사례를 분석해 보면 대개 공격 대상인 왕조가 지리멸렬할 때 아니던가.

현대판 혁명에 비견할 수 있는 선거 결과를 분석해 보면 이 명제는 대개 그럴듯하게 들어맞는다. 결과적인 분석이라는 약점은 있지만 지난 대선의 승패 요인도 따지고 보면 이와 유사하다. 지금 민주통합당은 전국을 돌며 참회의 인사를 하고 있다. 좀 있으면 대선 패배의 원인도 분석하고 5년 후 집권을 위한 전략과 전술도 마련할 것이다.

승자보다는 패자에게 동정의 눈길이 쏠리게 마련인 탓인지 대선이 치러진 뒤 한 달 가까이 된 지금까지 민주당의 패인을 분석한 백가쟁명식 충고가 봇물을 이룬다. 애정이 듬뿍 담긴 조언이 대부분이다. 새누리당의 승인 분석은 없다. 분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고 민주당이 잘못해서 이겼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리라.

새삼스럽게 민주당의 패인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지난 대선은 간판 인물은 민주당이 냈지만 사실상 진보 세력 전체가 진 것이다.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보수가 총집결했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진보가 총집결한 적벽대전 아니었나 싶다. 사상 처음일 정도로 똘똘 뭉친 진보가 졌다는 사실은 범상한 일은 아니다.

우선 이념의 과잉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대결 구도란 우리의 특수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국민들은 이데올로기에 별 관심이 없다. 누가 나를 더 잘살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줄지 생각하지, 반미니 반독재니 반재벌이니 하는 구호에 넋을 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리석은 민중 혹은 백성을 깨우쳐 악덕 자본주의를 까부수는 대열에 동참시키자고. 천만에, 어리석은 쪽은 국민들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을 고수하는 진보세력 아닐까. 선거 뒤 박정희 독재를 경험하고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의식 없이 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줄 수 있느냐고 원망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진보세력은 그 세대가 어떤 사고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도 하지않은 게으름이 있었고, 희망을 보여주는 비전 제시가 전혀 없지 않았던가. 한마디로 이 나라의 진보는 이념을 앞세워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열중한다는 이미지를 대다수 국민들에게 심어준 지 오래됐다. 귀족화된 노동단체와 이념의 덫에 갇힌 선생님들의 동아리가 단적인 예다. 갈수록 조합원이 줄고 있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러나 보수가 득세한 지금이야말로 진보에게는 황금의 기회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시라. 사회 주류에서 소외된 노동자와 농민, 서민층이 얼마나 많은지. 고민이 투영된 정책으로 이들을 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의 진보는 집권을 포기한 ‘영원한 반대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광복 1년 후인 1946년 6월 조선공산당과 결별하고 노동계급의 독재와 자본계급의 전제를 똑같이 반대하고 제3의 길로 나서서 험난하고 생소한 길을 걸은 죽산 조봉암 선생을 기억하기 바란다. 고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협로를 선택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실패한 옛길을 답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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