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29) 우물을 파는 사람 기사의 사진

우물을 파는 사람 (이어령, 두란노)

오래전 터키, 요르단, 시리아, 그리스, 이란 등 신구약성경에 나오는 현장들을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상당히 긴 기간이었던 그 여행 동안 비로소 성경의 지정적 현실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예컨대 성경에 나오는 ‘광야’의 개념이나 ‘포도원’ 혹은 ‘빛과 그늘’의 비유 같은 것이 현지를 여행하면서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리스와 터키 일대의 포도밭은 성경의 포도와 포도주 얘기가 왜 그토록 자주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바람에 건초가 날아다닐 뿐인 황량한 광야의 풍경들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우리땅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현실감을 주었다. ‘빛과 그늘’ 또한 그 광야에 움푹 파인 부분들의 짙은 그늘과 평지에 과도하게 쏟아지는 양광이 대비되면서 선명해졌음은 물론이다.

빛과 그늘이 선과 악의 비유로 겹쳐지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 광야의 우물이었다. 야곱의 우물 아래 왜 그토록 우물이 쟁점이 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를 파야 물이 나올지, 그리고 가능성을 짚어 힘들게 판다 해도 과연 물줄기가 터져 나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전의 시추공처럼 우물파기를 하다 보니 자연 부족 간, 심지어 형제 간에도 종종 분쟁과 갈등이 야기되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물이 귀한 곳인지라 나그네에게 마실 물을 대접하거나 발을 씻기우는 일은 귀중한 의식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빵보다도 물이 더 귀한 것이 그쪽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물’ 얘기 이전에 ‘빵’의 얘기부터 쓴 바 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갈증 때문에 물길을 찾고 우물을 팠던 것이다. 어찌 보면 성경적 귀결인 셈이다. 이 당대의 석학은 20대로부터 문, 사, 철을 두루 섭렵해온 학문의 포식자였다. 예컨대 지식의 빵을 여한이 없도록 포식해왔건만 저자는 나는 아직 배고프다, 배고플 뿐만 아니라 목마르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한 고백은 그러나 조금 색다른 것이다. 지식을 관통하고 섭렵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허기와 갈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은 예사로운 것이 아닌 지식의 결국에서 외친 처절한 토로일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어령이야말로 한국 기독교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가 기독교에 냉담할 때 나는 자주 거대한 빙벽 앞에선 것 같은 절망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이가 기독교 쪽으로 옮겨온다면 천군만마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생애동안 그런 기적은 일어날 성싶지 않은 느낌 때문에 받은 절망감이기도 했던 것이다.

십여년 전 저자는 우리 내외와 식사를 하다가 불쑥 소설가인 아내의 집필근황에 대해 물었다. 그이는 일찍이 아내를 작가의 길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는데 무슨 얘기 끝에인가 불쑥 이렇게 얘기했다. “종교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떤 면에서 예술창작은 악마와 손잡는 것이거든.” 그 식탁의 자리에서 나는 저 어른이 기독교 쪽으로 올 수 있다면, 하는 기대와 바람을 모두 놓아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 TV를 보는데 고인이 되신 하용조 목사 앞에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화면으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충격이었는데 그 충격을 수습할 새도 없이 ‘이어령’이라는 이름은 기독교서적부에 일대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게까지 그이의 ‘빵’ 얘기에 감동받았다는 사연들이 전해질 정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번에는 EBS방송의 프로그램으로 서울대 미술관에서 저자가 나의 미술작품들을 가지고 특강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보예수’로부터 시작하여 ‘생명의 노래’ 연작 등의 내 작품이 화면에 나온 후에 강단에 오른 그이는 이런 말을 했다. “진정 감동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개인적 상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조주 하나님과 닿아 있어야 한다.” 오래전 내 아내에게 했던 좋은 창작의 방법론을 정식으로 뒤엎는 순간이었다.

이어령은 지금 영적 우물파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에 그이는 다른 사람의 우물을 파주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물론 허기와 갈증의 종류는 달랐지만 말이다.

특별히 그는 나와 같은 쟁이들의 목마름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허다한 환쟁이와 글쟁이와 풍각쟁이들이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가 현실적 힘이 주어졌을 때 창작가를 위한 우물파기에 헌신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어령의 영적 우물파기 현장에 상처 입은 여인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가 글로 샘을 파서 나누어줄 물 한잔을 기대하며.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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