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30)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기사의 사진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어빈 D 얄롬, 최윤미 역, 시그마프레스)


저자는 미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이고, 역자는 영문학자이자 심리학자다. 내가 특별히 번역자를 소개하는 것은 그 번역이 참으로 놀랍도록 유려하면서도 완전한 문장으로 시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다독가는 책을 잡으면 곧 원작자뿐 아니라 번역가의 역량도 간파하게 되는데 쏟아지는 책 가운데 흡족한 번역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원작과 잘 조화되면서도 번역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 작품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는데 바로 이 책이 그랬다. 책을 읽다가 몇 번씩이나 뒷날개의 번역자 이름을 확인했을 정도였다.

똑같은 얄롬 팬인 아내에게 번역의 유려함을 얘기했더니 워낙 저자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번역자의 어휘력과 문장 구사력 또한 원저자에 못지않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사랑’의 이름을 걸고 씌어진 책 중에 적잖이 충격을 준 책이다.

‘사랑’ 하면 좋은 것, 달콤한 것의 의미로 다가오기 십상인데 여기 나오는 사랑은, 사랑은 사랑이로되 참으로 절망적이거나 뒤틀린, 그리고 고약하고 고통스러운 사랑 이야기가 태반인 까닭이다. 아, 사랑이라는 하나의 어휘 속에 이토록이나 다층적이고 복잡한 인간의 삶이 얹히는구나 싶은 것이다.

더불어 ‘사랑’에 관한 하나의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햇빛과 물로 자라는 나무처럼 인간은 사랑으로 크는 나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9·11테러 때 절망적 죽음의 상황을 앞두고 가족이나 애인과 마지막 주고받은 외마디같은 소리 역시 “사랑”이었다. 흔히들 사랑을 세 종류로 나누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랑은 백 가지 천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을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인간은 사랑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까지 갖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토록 여러 형태로 사랑을 갈망하는 것은 존재 저편에 웅크리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 때문이라고 보았다. 아니 존재 저편이 아닌 아예 자신의 생명인자 속에서 자라고 있는 ‘죽음의 씨앗’ 때문이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다가올 현실을 끊임없이 부정하거나 도피하다가 살아있는 동안 아예 그것이 의식되지 않도록 우리 삶에 가족, 동료, 연인과 같은 여러 존재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 관계의 그물망을 수시로 ‘사랑’의 이름으로 조이거나 엮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과 타인 사이에 결코 연결될 수없는 ‘틈’이 생김으로 해서 ‘실존적 소외’는 늘 불가피한 부분으로 남겨지는데 그럴수록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보면 ‘사랑’이라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단어는 사실 그 속에 날카로운 이기의 발톱과 생존논리를 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어쨌거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일종의 ‘흡수되어 버리는’ 축복받은 상태로 들어가게 되어 소외받고 불안하고 외로운 ‘나’에 대한 자의식이 녹아 없어짐으로써 마약 같은 행복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사랑의 상실 후에는 반대로 끔찍한 고통상태를 체험하는 것이어서 결국 ‘사랑의 처형자’라는 용어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사랑과 그 상실을 경험한 노쇠한 70대 여인 엘마가 나온다. 싸구려 트레이닝복을 입고 턱이 떨리며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퍼렇게 심줄이 튀어나온 주름살투성이의 노인 엘마는 십여년 전 한 심리치료센터에서 젊고 잘 생긴 연하의 수련의 매튜와 사랑에 빠진다. 엘마는 매튜와 27일간을 흡사 마법에 걸린 것처럼 사랑에 빠져 하늘로 붕 나는 듯한 체험을 했는데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매튜로부터 일방적인 결별을 선언받은 후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경험하고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다. 엘마는 그와 결별한 후 무려 8년간을 단 한순간도 그에 관한 생각으로부터 놓여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기억 속에서 27일간의 그 백일몽 같던 시간을 수도 없이 되돌리고 또 되돌렸지만 그 사랑은 이미 환각처럼 가버리고 난 뒤였기에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른바 사랑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먹지 못하고 자지 못했으며 수면제와 우울증 약만을 번갈아 한 움큼씩 먹다가 상담을 위해 저자 얄롬을 찾아온 것이다. 애초에 사랑의 획득을 경험하지 않았던들 그토록 쓰라린 상처도 없었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불나방처럼 사랑의 불길 가운데로 날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경우는 다르지만 모두가 엘마와 같은 사랑의 획득과 상실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책을 읽고나면 비로소 왜 성경에 세 가지 사랑이 나오는지, 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거듭해 물으셨는지 알게 된다. 예컨대 의존과 소유욕에서 발동된 애욕과 갈망이 아닌 희생과 헌신의 사랑은 같은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있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해와 달처럼 먼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설명하신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랑은 따라서 같은 죽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엘마가 사랑의 상실을 겪은 후 죽으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죽음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 범람하는 시대이다 보니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번호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면 “사랑합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사랑’은 그 본뜻을 잃고 싸구려 포장지처럼 날아다니게 된 것이다. 새삼 사랑의 의미와 깊이 그리고 그 무게와 다양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책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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