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人事도 패션처럼 하세요 기사의 사진

“서울 남성들은 등산을 매우 좋아하나 봅니다. 주중에 알프스에 가도 좋을 만한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하는 분들을 여럿 봤습니다. 서울 거리는 참 재미있네요. 하하!!”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온 패션 스타일 컨설턴트와 인터뷰할 때다. ‘이탈리안 클래식의 구루(스승)’로 꼽힐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듣는 기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말 속에는 두 개의 뼈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등산복을 비즈니스 캐주얼로 입는 패션 무감각, 또 다른 하나는 알프스 등반대에게나 필요한 고기능성 등산복을 입는 오버.

주변에 이런 사람 적지 않다. 그들의 변명은 이렇다. 산에 가기 위해 고가의 아웃도어를 마련했다(엄밀히 말하자면 아웃도어 의류지만 어느새 야외나 옥외를 뜻하는 아웃도어(outdoor)가 아웃도어 의류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매주말 가더라도 본전 빼기 어렵다. 게다가 입든 안 입든 5년 정도 지나면 기능이 약해진다.

그래서 매일 입기로 했다. 그럴듯한 이유다. 그럼 등산은 어디로? 설악산이나 한라산? 뭐야! 사람 놀리냐는 표정이다. 직장인이 주말에 오를 수 있는 산은 서울의 경우 기껏해야 도봉산이나 북한산이다. 그럼 알피니스트를 위한 고가의 옷을 산 이유는?

경기도 과천 청계산 입구에는 유명 브랜드의 아웃도어 매장이 즐비하다. 여기서 고가의 아웃도어는 입산이 아니라 하산하는 이들이 주로 구입한단다. 지난주 아웃도어 브랜드가 마련한 기자간담회서 영업 센터장이 들려 준 말이다. “산에 오르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유명 브랜드 등산복과 견줘 자신의 옷이 초라해 보여 집에 돌아가면서 고가의 등산복을 산다”나.

등산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는 중·고생들도 고가 아웃도어의 주요 고객이다. 유명 브랜드의 아웃도어를 사기 위해 자신의 부모를 ‘등골이 빠질 만큼’ 힘들게 한다는 신조어 ‘등골브레이커’가 등장한 게 2년 전이다.

몇 해째 이어지는 불황에 울상인 패션가에서 유독 아웃도어만 승승장구다. 무릇 옷은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게 입는 게 기본이다. 아웃도어의 호황은 이 TPO를 깡그리 무시한 옷 입기 덕이 아닐까 싶다. TPO를 무시한 옷차림은 본인을 볼썽사납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어 비즈니스를 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아웃도어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TPO를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반인은 물론 대중 앞에 나서는 인물들도 마찬가지인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TPO를 잘 지키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선이 끝난 다음날 하루 세 번 옷을 갈아입었다. 대통령 당선자로서 이날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 때는 검정색 바지 정장에 검은 패딩코트를 입었다. 이어 여의도 당사에서 대국민 인사를 발표할 때는 회색 바지 정장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오후 주한 대사들을 접견할 땐 검정색 바지 정장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장소와 상황에 맞게 옷차림을 세심하게 챙긴 박 당선자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만사(萬事)인 인사도 TPO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그 직책에서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킬 만한 능력을 갖춘 인물을 찾아야 한다. 인수위원회 수석 대변인에 이어 총리 등 지금까지 박 당선자의 인사는 적재적소(適材適所)란 생각은 들지 않아 안타깝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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